[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07. 스스로 갈고 닦는 수신의 작업관, 박서보 ‘묘법(9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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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1931~)는 국내 최초의 앵포르멜 작가이자 한국 추상미술을 이끈 작가이다. 앵포르멜(Informel)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을 말한다.

박서보는 1950년대에 ‘원형질’ 연작으로 전후 한국사회를 표현해 한국적 앵포르멜을 이끌었다. 1956년 ‘반국전 선언’을 발표하며 기성 화단에 도전했다. 1970년대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인 ‘묘법(描法)’ 시리즈를 제작하는 등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정신과 끊임없는 작가적 탐구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립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서보가 1970년대부터 발표한 ‘묘법’ 시리즈는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한 것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긋기를 반복한 것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는 한지의 물성을 이용해 캔버스에 한지를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붙이는 행위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손의 흔적 대신 도구를 사용해 평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부한 색감이 드러나는 색채 묘법을 대형 캔버스에 그려 냈다.

‘묘법(970520)’은 후기 묘법 시기인 1997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종이로 이루어진 표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밀어내 요철의 선들이 생성된다. 이 작품은 규칙적인 선과 면으로 구성된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조형 언어로 작가만의 예술세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

‘손의 여행’ 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지칭하듯이, ‘묘법’은 행위의 반복을 통한 자연과의 합일의 표현이다. 그리고 부단히 그려 가는 데서 시작해 다시 모든 것을 비워 내는 데까지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이라는 박서보 작가의 작업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지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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