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내가 맡긴 달란트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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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주인이 오래 집을 비우게 되어 세 명의 종에게 각각 10달란트, 5달란트, 2달란트를 맡기면서 잘 지키라고 말했다. 돌아온 주인이 그 돈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첫 번째 종은 10달란트를 잘 굴려 10달란트를 더 벌었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 종도 5달란트를 잘 굴려 5달란트를 더 벌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어 2달란트 그대로 남았다고 대답했다. 주인은 앞의 두 종은 칭찬했지만, 마지막 종은 크게 꾸짖으며 내쫓았다. <성경>의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다.

전문경영인-주주 간 정보 비대칭 문제
대리인의 사익 추구 ‘도덕적 해이’ 불러

공무원·공기업 국민 이익 위해 일해야
LH 부동산 투기는 팔수록 ‘점입가경’
정부가 ‘아파트 장사’ 왜 하나 의문도



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자. 만약 첫 번째 종이 새로 번 10달란트를 주인에게 주지 않고 자기도 돈을 땅에 묻어 뒀다면서 처음의 10달란트만 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주인-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들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경영을 맡는 것은 주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때 전문경영인은 주인의 이익을 위한 대리인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일어나기도 한다. 주인을 속이는 종도 마찬가지다. 종은 주인이 맡긴 돈으로 번 수익을 주인에게 돌려줄 수도 있고 자신이 몰래 가질 수도 있다. 주인은 종이 자신이 준 돈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종은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10달란트를 벌고도 5달란트만 벌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 즉 모든 정보를 종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그리고 공기업의 목적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공기업은 대리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파면 팔수록 점입가경이다. 예전에도 자주 있던 수준의 비리인 줄 알았더니 공기업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이만큼이나 심한 줄은 몰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개발에 관한 정보를 LH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업의 직원들이 업무상 정보에 접근하고 공유하는 일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정보를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변인들의 투기를 위해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이 몇몇 LH 직원들만의 문제일까? 이번 LH 사건의 핵심은 구조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엄청난 이익이 오가는 정보를 다루면서 그 정보를 공유하는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금이라도 법을 어긴 직원은 당연히 적발해서 처벌해야 하고, LH의 조직구성과 운영에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한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고민해 보아야 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LH의 존재 그 자체의 이유다. LH와 그 직원들이 저렇게 엄청난 이익이 걸린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정부가 땅을 사서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파는 우리나라의 부동산개발정책 때문이다. 산업화 초기도 아니고 정부가 민간이 생산해야 할 구두나 자동차를 직접 만들어 판다면 누구나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터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왜? 물론 공공개발이 필요한 사업도 있다. 서민이나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처럼 부동산 소외 계층을 위한 공공주택은 정부가 할 일이 맞다. 하지만 지금 LH가 하는 일은 국민들의 사유재산인 토지를 자기 마음대로 수용해서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시장에 비싸게 팔아먹는 일이다. 이런 방식의 주택공급을 정부가 직접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도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결과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과 투기의 확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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