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꽃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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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남파랑길 8코스

창원터널을 빠져나오자 벚꽃의 고장이었다. 축제가 취소돼도 꽃은 피니까, 거리를 두고 봄꽃을 마중하러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장복산 벚꽃트레킹 코스를 찾았다. 진해에는 모두 36만 그루의 벚꽃 나무가 있다. 비오는 춘분이 지난 다음날, 도심 창원대로의 가로수 벚꽃은 이미 꽃망울을 틔웠지만 산에서는 아직 분홍빛 봉오리를 밀어올리는 중이었다. 벚꽃 개화는 하루가 달라서 며칠 지난 지금은 온 산이 환할 것 같다.


바다·산·꽃 함께하는 장복산 벚꽃 트레킹 코스
진해 상리마을서 진해드림로드까지 15.7km
관광공사 비대면 여행지 평가 ‘5점 만점에 5점’
6시간 걷는 내내 진해 시가지·바다 풍경과 동행

■가장 오래된 벚꽃길에서 출발

여정의 시작은 장복산길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2013년 전국의 벚꽃 가로수길 20선을 추천하면서 경남 4곳을 포함했는데, 진해에서는 장복산길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여좌천로가 들어갔다. 두 곳 모두 1920년 전후에 조성돼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길이다.

옛 창원시와 옛 진해시를 가르던 장복산길은 지금의 장복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창원이나 마산에서 작은 마진터널을 통해 진해로 오는 통로였다. 왕복 2차로 좌우 3km 길에 심은 아름드리 왕벚꽃 나무는 1000여 그루다. 장복산길에서 장복산조각공원 위, 창원편백치유의숲 치유센터 건물을 끼고 돌아서 오르막을 좀 더 올라가면 장복하늘마루길 시점 안내판이 보인다.

이날 걸을 길은 남파랑길 8코스(15.7km)에 해당한다. 남파랑길은 코리아 둘레길의 하나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1470km 90개 구간을 잇는 길이다. 2015년 동해안을 연결하는 해파랑길에 이어서 지난해 10월 전체 개통했다.

창원 구간은 6~11코스로, 8코스는 진해구 상리마을 입구에서 진해드림로드 입구 구간이다. 진해드림로드 4개 코스(27.4km) 가운데 창원시의 추천 구간인 1코스 장복하늘마루길(4km) 전체와 2코스 천자봉해오름길(10km)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진행 방향은 남파랑길 8코스의 역방향, 진해드림로드 입구에서 시작해 상리마을 입구로 나오는 걸 잡았다.

진해드림로드는 장복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산림도로)이다. 장복산은 웅산(시루봉), 천자봉으로 이어지면서 항구도시 진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산자락의 4부 능선 정도를 가로지르는 길이기 때문에 걷는 내내 진해 시가지와 진해만의 바다 경관이 함께한다. 편백과 단풍나무로 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벚꽃을 시작으로 영산홍, 복숭아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시민 공모로 지은 이름처럼 꿈길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진해드림로드는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관광지의 혼잡도, 교통량, 방역상황을 고려해서 매긴 ‘비대면지수’에서 5점 만점에 5점을 받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첫 구간인 장복하늘마루길은 장복산조각공원에서 출발해 하늘마루전망대와 편백숲 쉼터를 지나서 안민고개에서 끝난다. 평탄한 임도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산자락를 따라서 물결처럼 부드럽게 커브를 그린다. 커브를 돌 때마다 옆에서 또는 앞에서 나타나는 천자봉과 덕주봉의 산세도 박력이 있다. 스틱과 본격 등산복을 갖춘 산행족부터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반려견을 안고 걷는 사람, 트렌치 코트를 입고 둘셋이 함께 걷는 여성들, 아이들과 함께 걷는 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MTB 자전거를 탄 사람이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안전한 길이라 혼자 걷는 사람도 많다.

하늘마루전망대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올라가보자. 진달래꽃 사이로 나무데크 계단을 잠깐만 오르면 팔각정자와 전망대가 나온다. 왼편으로 불모산, 시루봉, 천자봉이 어깨를 맞대고 솟았고, 아래로는 반듯한 도심 시가지 너머로 해군기지사령부와 속천항, 행암만 등 진해만 바다 풍경이 탁 트인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루봉과 천자봉은 해병대와 해군 출신이라면 지옥행군 코스로 기억하는 곳이다. 시루봉 꼭대기에는 1964년 해병대 신병들이 한 글자당 사방 50m 크기로 흰칠을 한 ‘해병혼’ 글자가 있다. 속천항 중앙에 동그마니 떠있는 작은 무인도 대죽도와 대죽도를 둘러싸고 정박한 배들이 정겹다. 멀리 부산 가덕도와 거가대교도 보인다.



■최초의 군항도시와 벚꽃의 관계

하늘마루전망대의 이 풍경은 진해라는 도시의 썸네일로 적합하다. 진해는 조선시대부터 이미 유명한 군항이었다. 배를 대기에 좋고 일본과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일찍이 부산포와 함께 왜인들의 무역 창구였고,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왜군에 맞서서 대승을 거둔 무대였다. 일제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진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군항 도시를 세우기로 하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해군 건물들을 이 때 지었다.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가 진해에 자리를 잡고,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이 국내 최초로 진해에 생긴 것도 이렇게 된 일이다. 이순신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가 바로 군항제의 시작이다.

마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진해에서 군 생활을 한 저자 김대홍의 책 ‘마산 창원 진해 -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에는 이와 같은 진해의 역사와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가 등장한다. 4월마다 진해공관에서 휴가를 즐길 만큼 진해와 벚꽃을 사랑한 그가 1976년 4월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뒤 진해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가로수뿐만 아니라 산이나 들에도 심을 수 있는 곳에는 모두 벚나무를 심어서 진해시를 벚꽃의 명소가 되게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1920년대부터 전국적인 벚꽃장(벚꽃축제)으로 이름났던 진해가 원산지 논란 같은 우여곡절을 딛고 벚꽃도시의 명성을 이어온 데에는 이와 같은 ‘핀셋’ 지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장복하늘마루길의 종점은 역시 벚꽃 터널로 유명한 안민고개의 안민데크로드로 이어진다. 부산의 황령산 벚꽃길처럼 드라이브나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데크로드를 700m 정도 걸으면 안민휴게소와 진해드림로드 표석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진해드림로드 가운데 창원 사람이나 외지 사람 모두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천자봉해오름길이다. 전체 10km 구간을 걸으면 4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곳곳에 편백숲쉼터, 황톳길, 해병훈련체험 테마쉼터 등 쉬어갈 곳들이 많다. 진해만생태숲, 목재문화체험장 등을 갖춘 진해드림파크를 포함해 도중에 빠져나올 수 있는 길도 있어서 자녀와 함께 체험 여행을 하기에도 괜찮다.

천자봉해오름길은 장복하늘마루길보다 벚꽃도, 사람도 많다. 산자락길을 빙 둘러 오는 동안 하늘마루전망대에서 내려다보았던 진해 바다의 대죽도는 점점 다가온다. 천자암에서는 천자봉등산로로 접어들 수도 있다.

이 코스의 종점인 대발령 쉼터까지 가지 않고, 천자암을 지나서 90% 정도 지점에서 남파랑길 역방향을 뜻하는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마을 방향으로 난 길로 뒤돌아 내려간다. 내내 오른쪽에 있던 대죽도가 이제는 왼쪽에 있다. STX 조선소의 크레인도 잡힐듯 가까워졌다. 오래 가지 않아 상리마을 길로 접어든다. 남파랑길 8코스의 시점이자 역방향 종점인 상리마을 정류장이다. 항해를 끝내고 정박한 선박들이 여정의 종착지 이미지로도 꽤 어울린다.

남파랑길 8코스 구간은 빠르면 5시간, 쉬엄쉬엄 걸으면 6시간 정도가 걸린다. 바다와 산과 꽃이 함께하는 더할 나위없는 트레킹길이다. 등산로로 접어들거나 삼밀사나 청룡사 같은 사찰에 들르거나 체험시설을 이용하는 등 걷는 사람에 따라서 원하는 구간을 원하는 방법으로 걸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창원시의 생태관광 프로그램 ‘창원편백숲 욕(浴) 먹는 여행’ 3코스와 연결해 여좌천과 제황산공원 등 시내 구간을 둘러봐도 좋겠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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