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지역 대학을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보는 수도권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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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사회부

“대학 마저도 ‘고추 말리는 공항’ 시각으로 재단한다.”

최근 불거진 지역 대학 위기를 두고 쏟아지고 있는 수도권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지역 대학 관계자들이 내뱉는 푸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수도권 언론이 “경쟁력 없는 비수도권 대학은 망하는 게 당연하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쓰면서 가뜩이나 대규모 미달로 어려운 지역 대학을 두 번 죽인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건설이 확정된 가덕신공항을 두고 ‘고추 말리는 공항’ 심지어 ‘멸치 말리는 공항’으로 폄훼하는 수도권주의자들의 시각과도 묘하게 겹친다.

이들 보도는 우선 망해버린 대학가 주변의 스산한 풍경 스케치로 기사가 시작된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중에서도 수도권주의자들의 오만함이 묻어나는 지역 대학 관련 보도를 하나 보자. 아마도 기사를 쓴 기자는 지역 대학의 위기 타개책으로 대학의 ‘특성화’를 제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수도권 신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해당 보도는 비수도권 대학이 서울의 주요 대학을 흉내낸 학과를 개설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용한 말 수준이 가관이다. “대학가에서 “지방대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 주요대 학과 구성을 너도나도 따라 해 미국보다 한국에 영문과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돌 정도다.”

한 가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순수학문은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르쳐야 하는가. 비수도권 학생들이 순수학문을 전공하고 싶다면 죄다 ‘인서울’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수도권 신문의 비수도권 자존심 긁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경북의 한 대학 교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학과를 신설하거나 학과명을 바꾼 지방대가 많지만, 제대로 가르칠 교수도 따라올 학생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비수도권 대학에 개설된 4차 산업혁명 관련 학과 역시 서울 주요 대학 따라하기 주장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러니 능력도 없는 비수도권 대학은 애초에 4차 산업혁명 관련 과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1970년대 대한민국을 향해 “능력이 안 되니 자동차, 조선, 반도체 산업은 쳐다보지도 말고, 지금 잘하고 있는 합판, 가발, 신발만 계속 만들어라”고 하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위기의 지역 대학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결국 수도권 1극주의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으로 귀결된다. 비수도권의 학령인구 감소와 저출산은 모든 사람과 돈이 수도권으로 빨려들어가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됐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수도권대학에 엄청난 재정을 퍼줬다. 심지어 지역거점국립대보다 서울 주요 사립대에 쏟아 부은 재정지원이 더 많다. 지역거점국립대 중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최고인 부산대조차 서울 일부 사립대보다도 교육비가 낮은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 제대로 가르칠 교수도 따라올 학생도 없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수도권 대학을 포함해 전국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감축해야만 그나마 비수도권 대학의 숨통이 트인다. 그런데 이 정부는 대학 정원 관리에 아예 손을 놓은 모양새다.

마지막으로 수도권 대학의 능력이 출중하니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도 건재하다는 인식도 의심해봐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니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된다는 승자의 오만함과 능력이 없어 실패했다는 패자의 자기 비하가 심각한 사회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샌델 교수는 또한 자신이 성취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룬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권한다. 단지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제발로 찾아와서 등록하는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우리 고등교육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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