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 건너는 구원의 가능성 이미 우리 주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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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소설집 <배리어 열도의 기원>(강)을 출간한 김가경(56) 작가의 생각은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그는 “작고 낮은 데서 표나지 않게 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구원의 열망과 가능성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다”라고 했다. 구원이 있다는 건 이 힘든 세상을 건널 수 있는 희망이자 가능성이다. 그의 소설은 세상에 ‘빛’을 던진다고 할까. 사람들이 간과하는 희망과 빛이 도처에 있다는 거다.


김가경 ‘배리어 열도의 기원’
희망 말하는 두 번째 소설집

그는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 고향은 충북 진천 사석리, 유명한 미군 부대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흑백인종의 미군, 양공주, 서 씨 집안 집성촌 사람들 등 온갖 군상들이 복잡하게 얽혀 흥청망청 사는 곳이었다.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그의 집은 서 씨 집성촌에 다른 성씨로 섞여 살았다고 한다. 온갖 사람들이 뻔하고도 속악하게 뒤섞여 살았던 때문이었는지 그는 “외부에서 완벽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올 거라는 믿음을 가졌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에 오곤 했던, 이북 출신이라는 풍설의 ‘이북이’라는 거지가 어린 그에게는 ‘먼 곳에서 온 성자’처럼 보였다고 한다. “외부의 존재에 대해 마음이 설??어요. 구원의 기대를 걸었던 거죠.”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 8편은 ‘삶의 주변’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인물들의 얼개로 짜여졌다. ‘삶의 구원자’는 다양하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가경의 소설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 구원자라고 대단한 왕관을 쓴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소박하고 조촐한 삶을 살고 있는데 다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묵묵히 자기세계를 지키는 구두 장인 찰스(‘꽃밭의 찰스’), 남루한 미장원을 지키고 있는 늙은 미용사(‘궁핍하여라’), 우리 몸속에는 별이 박혀 있다고 말하는 정숙 씨(3편의 연작)를 비롯해 진정성의 세계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이들이다.

그는 등단하기 직전인 40대 중반에 엄청 울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정말 공부를 많이 한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는 완벽한 존재(구원자)가 없다고 단언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크게 흔들리는 충격이었어요.” 이번 소설집은 이를테면 그 충격에 맞서 구원의 가능성을 옹호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다만 구원을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암시하거나 상징하는 작품들이다.

표제작 ‘배리어 열도의 기원’에서 배리어 열도는 거센 파도에 맞서 상처를 견디는 자들의 연대를 상징한다. 상처를 견딘다는 것은 구원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는 “리얼리즘과 환상은 맞물려 있다”고도 했다. 그것은 요컨대 ‘팍팍한 삶의 실상’과 ‘구원의 가능성’은 맞닿아 있다, 우리 삶 속에 꿈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은 개성적 문법을 갖추고 있다. 이야기와 사건을 만들기 위해 등장인물을 쉽게 죽이는 과도한 서사가 없으며 여러 갈래의 다양한 얘기들이 나와 소설의 풍성한 살(肉)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상에 상당히 근접한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독후감이 남는다. 그는 “소설 소재를 최대한 공부해서 작품에는 최소한으로 쓴다”라고 했다. 그리고 “많이 읽으면 그것에 갇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으려 한다”라고 했다. 부산일보(2009)와 서울신문(2012)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2016~2018년 부산소설문학상, 요산창작지원금, 현진건문학상을 차례로 받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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