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불안한 삶·인과 관계 없는 세상사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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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 / 편혜영

은 소설가 편혜영의 신작 소설집이다. 편혜영은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쓴다는 작가다. 그의 소설은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덜 분명하다. 가령 ‘호텔 창문’에서는 불이 난 호텔 창문에 사람인지 뭔가가 어른거린다며 주의를 끄는데 그러고는 만다. 세상일이란 결정적으로 딱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게 없다는 거다. 뭔가 깊고 복잡한 연결이 있다는 거다. 그걸 찾는 것은 독자 몫이다. 그러니 좀 불친절하다고 할까.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인물들에게 일어난 불행이나 현재의 자신에 이르게 한 과거의 일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인과 같아요.” 삶과 세상에는 명확한 인과가 없다는 거다. 이 세계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표제작도 그렇다. 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부부가 넓은 옥수수밭이 펼쳐진 시골로 이사를 왔는데 사람들과 이곳 분위기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삶은 원래 불안하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 한 날 남자는 옥수수밭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가 밤하늘의 꽉 찬 보름달을 보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생각한다. 그때 뇌까리는 대사가 ‘어쩌면 스무 번’이다. 곧 죽을병에라도 걸린 걸까. 그렇지 않다. 그 대사는 불안의 뉘앙스를 조장한다. 우리 삶은 항상 불안하다는 거다. 편혜영 지음/문학동네/232쪽/1만 3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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