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허무,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견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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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음(57) 시인은 박서영 시인의 죽음을 “문학적 혈연을 잃은 듯 슬펐다”라고 상기했다. 박서영은 2018년 2월 50세로 안타깝게 타계한 시인이다. ‘죽음은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불멸이다.’ 시에 삶의 모든 것을 걸었던 박서영은 저 불멸의 문장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다. 손음은 잊지 못하는 박서영을 목련으로 불러낸다.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걷는사람)는 손음이 10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이다. 10년이 긴 만치 생각의 흔적은 갈래갈래다. 시집에는 수국 달개비 동백 맨드라미 벚꽃 자귀꽃 등 꽃들이 많이 나오고, 그 중 가장 슬픈 목련이 있는 것이다. ‘목련의 일이란 잠시 꽃의 행세만 하고 떠나가는 일/ 짧은 시간 동안 통점만 앓고 가는’(47쪽). 목련처럼 잠시 피었다가 박서영은 가고 없다. 박서영이 가버리고 없는 곳, 목련이 있다가 떨어진 그곳을 향해 손짓을 해본다. ‘우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날까/ (중략)/ 목련이 피는 저곳과 이곳은 피안과 차안의 경계’(38~39쪽). 이쪽은 ‘툭’하고 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 소리 나지 않는 그쪽은 아득할 수밖에 없다.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
손음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먼저 떠난 ‘문학적 혈연’ 회상 ‘주목’


닿을 수 없는 곳, 허무한 이곳,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이런 물음이 손음의 시적 출발점인 것 같다. 그 물음의 답은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통증과 허무를 견디리라는 거다. 일찍이 그가 흠모하던 시인 전봉건(1928~1988)이 걸었던 길이다. ‘시퍼런 욕을 삼키느라 하루를 보낸다/ (중략)/ 곧 무엇이든 내게 닥쳐올 것이 있을 것이다/ (중략)/ 이 비겁하고 아름다운 생에 나는 눈뜰 것이다.’(32쪽) 아름다움에 눈 떠서 보니 ‘밥 묵고 오끼예’라고 써놓은 빈 가게의 문구는 ‘봄날의 나물 같은 사투리’(18쪽)이며, 자목련은 ‘자목자목’(93쪽) 지고 있고, 창밖에서 비는 ‘창밖창밖’(101쪽) 떨어진다. 언어가 봄나물 향을 내며, 또 모양과 소리를 그대로 울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고 한다. “언니는 15살, 오빠는 8살이 저보다 많고, 막내 남동생은 8살이 적었어요.” 식구들은 함께 밥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나 (중략) 햇볕에 드러난 것은 왜 모두 가련한가 수초가 자라는 우물 안은 개구리가 매달려 있고 나는 뒤꿈치를 들고 고개를 처박은 채 꺼내 줄까 개구리야, 꺼내 줄까 개구리야 아름다운 시간의 옹알이를 들려준다’(21쪽). 우물 안에 혼자 매달려 있는 개구리는 ‘내 모습’이다. ‘꺼내 줄까 개구리야’, 그는 거기에 매달려 있고 통증의 그 심부에서 아름다움을 꺼내는 거다.

염화미소는 ‘꽃을 들어 보이자 미소 지었다’는 오래된 얘기다. ‘통영 트렁크’는 통영 다리 위에 서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던 서른 무렵 시인의 기억이 나오는 시다. 수국이 그를 살렸다. ‘한철 아름다움의 명을 받아 무게의 천형을 머리에 이고 가는 저 수국처럼 나는 내가 가진 생의 무게를 건너가야 하리’(56쪽). 손음은 다리를 건넜고 수국을 들어 보인다. 박서영이 저쪽에서 미소 짓는다. 손음은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본명은 손순미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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