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시를 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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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밤빛’의 한 장면. 씨네소파 제공

퇴직하시고 밀양에 머물고 계시는 여든의 선생님께서 시집을 보내주셨다. 연락을 드리지 못한 마음에 울컥, 시를 읽으며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가을 한철 억새꽃이 되어 은빛 물결로 살다가 바람이 된다는 것/ 바람으로 살다가 바람 소리 떠나보내고/ 다시 고요해진다는 것/ 한겨울 빈 가지가 되어 눈 오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겨울 숲속의 나무와 같은 문장을 쓴다는 것/ 나를 비운다는 것은/ 폐사지 탑 그림자처럼 마른다는 것/ 산그늘처럼 마른다는 것/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른 듯이 마른다는 것/ 내 안의 축축한 죄의 기억을 몰아낸다는 것/ 내 안의 슬픔과 울음 한 됫박을 덜어낸다는 것/ 단순해진다는 것/ 침묵한다는 것/ 기다림을 받아들인다는 것/ 나를 비운다는 것은/ 죽음을 산다는 것(조달곤,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

조달곤 시인 시와 김무영 감독 ‘밤빛’
‘비워냄’에 대해 화두 던지는 작품 둘

늙은 심마니 앞에 불쑥 나타난 아들
함께 시간 보내며 생애 의지 생겨나
‘천천히 가도 좋다’ 깨달음 주는 영화



욕망의 굴레에 갇혀, 소음과 쓰레기, 잡동사니를 가지고 사는 ‘나’는, ‘나를 비운다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비움과 단순하게 사는 삶이 죽음에 귀결한다는 사실이 아프고 슬프다. 여기 또 한 명,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는 삶. 죽음을 살아내는 한 인물을 만난다.

‘밤빛’의 심마니 ‘희태’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인물로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아들 ‘민상’이 찾아오면서 희태는 그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드는 시간을 경험한다. 그러고 보니 희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차갑던 산속 공기가 민상이 찾아오면서 따듯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낮도 밤처럼 어둡게만 살던 희태는 절대로 마주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민상을 만나면서 2박 3일의 시간 동안 잠시나마 일상의 의미를 되찾는다. 물론 김무영 감독의 ‘밤빛’은 감정이나 정서를 ‘언어’로 설명하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교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함께 하늘과 별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밥을 나눠 먹고, 잠을 자고, 평범해 보이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러한 시간이 부자(父子)가 그리워했을 시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영화의 제목처럼 밤(어둠)과 빛은 아름다운 풍광을 만든다. 감독은 밤의 캔버스야말로 낮과는 다르게 빛의 다양한 모습을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보았다. 희태가 불안해하면서 빛을 켜는 양초는 칠흑 같은 산속 부자를 비추는 한 점 빛이 되고, 밤하늘의 별빛이 그날의 유일한 빛인 것처럼 아련하며, 어둠 속에서 희태와 민상이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잔상들은 그들의 삶을 보듬고 어루만지는 빛의 세심한 손길처럼 느껴진다.

특히 무뚝뚝해 보이던 희태가 낮에는 차마 정면으로 볼 수 없었던 아들의 얼굴을 밤빛에 의지해 훔쳐보는 두 번의 장면은 울림이 크다. 희태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보고 싶지만 아직 용기가 생기지 않는지 손길을 거둔다. 다음날 새벽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데 성공한 희태. 죽음마저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듯 보였던 그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아직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살고 싶다는 몸짓으로 보인다.

나에게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시를 쓴 영화가 동시에 도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밤빛은 척박한 삶을 숨기기 위해 더 강하고 강렬한 빛(조명, 네온사인)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라면, 영화의 ‘밤빛’은 애쓰지 않는다. 쉼, 어둠, 죽음, 느림, 슬픔, 침묵, 작은 빛으로 조용히 쉬어가게 만든다. 천천히 가도 좋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우리에게 채움만이 미덕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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