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나목 /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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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천안 관음의 손이라도 모자랄

일로써 일을 만드는 손

생명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손

이고지고 양손에 들고도 다 못 가져갈

이승의 짐, 고스란히 내려놓고

빈손이 할 수 있는게 악수뿐이겠습니까

마주쳐 박수치면 모두가 기뻐하는

격려와 찬사뿐이겠습니까

용서와 화해 못 녹일 게 없는 용광로

수십 번 벼리어 단련된 맑디맑은

쇳소리로 허공을 가르는

바람의 칼이 고요를 그어 피 나지 않고

각자 제 나름의 길로 가는 우리

내 빈 손이 아니면 그대

빈손의 따스함을 어찌 느끼겠습니까.



-박정애 시집 <가장 짧은 말> 중에서-
역사의 현장에 삶의 일부가 중첩되었던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일까? 민주화의 상징적 희생에 가족을 보내고 젊음을 보낸 그녀가 사십이 되어서 택한 길은 시였다. 분노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시의 치유 능력을 통해서 용서와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나서도 문학의 길은 험하고 지난했다. 옳다고 믿었던 신념은 언제나 현실 앞에서 넘어졌고 늘어나는 시인의 숫자만큼이나 복잡해진 시단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부초 같은 시인의 길 위에서도 한결같이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는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성을 통해서 실천하는 용서와 화해였다. 이성은 진부한 것이고 공리주의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요즈음 시단에 던지는 시인의 따뜻한 메시지는,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 온 70년 인생의 결과이다. 시인이 노래하는 인간화된 자연의 온화함 속에서도 문득 20년 전 ‘청하장군’ 시절 시인의 패기가 보고 싶어지는 요즈음이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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