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학 회생시킬 의지 있나” 공허한 ‘지방대 육성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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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는데 한가한 소리하는 교육부”

교육부가 지난달에 발표한 ‘제2차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두고 지역 대학가는 심드렁한 반응이다. 물론 정책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기본계획에 담은 내용을 보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짜깁기 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의 핵심이기도 한 수도권·비수도권 전체 대학 정원 감축은 단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교육부가 지역 대학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되는 이유다.


교육부 ‘제2차 지방대학 육성지원 계획’
“진행 중인 사업 짜깁기 수준” 지적
핵심인 전체 대학 정원 감축 언급 없어
‘혁신공유대학’은 수도권 대학도 참가
비수도권 대학 자칫하면 들러리 신세


■“이미 진행 중인 사업 재탕”

교육부가 지방대학 육성 기본계획에서 지역대 역량 강화 방안으로 밝힌 제도적 지원은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 플랫폼’과 ‘디지털 혁신공유대학’이다.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은 지자체와 지역 대학, 기업이 협력 체계를 구축해 청년이 지역에 취업·정주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플랫폼 사업에 국비 1710억 원을 지원해 전국 8개 내외 지자체로 확대한다는 계획(부산일보 2월 10일 자 10면 보도)이다. 교육부는 지역혁신 플랫폼 지역을 ‘고등교육 혁신 특화지역’으로 지정해 최대 6년간 고등교육 규제를 유예한다.

올해부터 추진하는 디지털 혁신공유대학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신기술 분야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관련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이다. 교육부가 지정한 8개 신기술 분야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차세대 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실감미디어(증강·가상현실) △에너지 신산업(신재생에너지) 등이다. 교육부는 각 분야에 100억 원 이상 투입할 예정이다. 사업 참가 대학들은 보유한 첨단 기자재 등 자원을 공동 활용하고, 교원, 관계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

그동안 정부의 수도권 대학 재정 퍼주기 관행에 비판이 빗발치자 교육부는 이번에 ‘재정지원사업의 지역 간 균형 제도화’를 도입했다. 고등교육 재정 투자 방향에 국가균형발전 개념을 넣은 것이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국립대 지원을 강화하고, 오는 9월까지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한다.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고영삼 원장은 정부의 이번 계획에 대해 “다른 시도보다 국립대가 많은 부산 입장에서 법을 제정해 국립대를 지원한다고 하니 반갑다”면서 “대학에 지역균형발전 개념 도입과 지역 전문 대학을 활용한 평생 직업교육 강화 방안도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다만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은 지난해 3개 플랫폼 지정에 이어 올해 1개 플랫폼 추가로 그쳤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번 계획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반복 나열했을 뿐 눈에 띄는 정책은 없다는 혹평도 나온다. 부산의 A 대학 관계자는 “도심 융합 특구, 캠퍼스 혁신 파크 등은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이다”면서 “교육부가 급하니까 기존 사업에 무늬만 좀 바꿔서 계획을 내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좋은일 시키는 ‘공유대학’?

지역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지방대학 육성 기본계획 중 디지털 혁신공유대학에 할 말이 많다. 우선 지역 대학을 살리겠다고 내놓은 대책에 수도권 대학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넣어놔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공유대학에 참가할 여건이 되는 지역 대학이 많지 않다 보니 자칫 해당 계획이 지역 대학 살리기는커녕 수도권 대학 좋은 일만 시킨다는 우려가 앞선다.

교육부는 미래산업 8개 분야별로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4~7개(전체 48개 대학)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공유대학 사업을 준비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비수도권 대학이 컨소시엄에서 40% 이상 돼야하기 때문에 지역 대학의 참여가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비수도권 대학이 컨소시엄을 이끄는 주관대학을 맡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유대학은 전체 사업을 설계하는 주관대학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역량 격차가 큰 상황에서 사업이 진행되면, 주관 대학은 수도권 대학이 맡고 비수도권 대학은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부산대 등 9개 지역거점국립대학들은 주관대학에 비수도권 대학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주관대학의 지역 할당제는 계획에 없다.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며 “대학들이 잘 참여해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공유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역의 중소 규모 대학은 공유대학 사업에 참여하기가 더 어렵다. 작은 규모의 대학 중 미래산업 8개 분야에 특성화가 잘 이뤄진 대학이 많지 않다. 지금이라도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해당 학과를 신설한다면 거액의 투자를 해야만 한다. 가뜩이나 정원 미달로 등록금 수익도 구멍 난 판국에 지역 대학 자체적으로 미래산업 학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의 B 대학 관계자는 “아마도 비수도권에서는 거점국립대나 경쟁력 있는 국공립대, 규모가 큰 사립대가 아니고서는 공유대학 사업에 참가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수준일 것이다”고 꼬집었다.

■핵심은 전체 대학 정원 감축

지역 대학가는 교육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전체 대학 정원 감축을 빠뜨렸다고 지적한다. 이미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와중에도 수도권에 모든 게 쏠려 있는 사회 구조 특성상 수도권 대학이 학생 또한 빨아들이고 있다. 비수도권 대학이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수도권 대학이 학생을 계속 독식한다면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어느 정도 줄이는 게 비수도권 대학의 고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입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수도권 16개 대학의 정시(수능 전형) 비율이 40%로 확대된다. 이렇게 되면 지역 대학에 올 학생이 더 줄어든다. 부산 C 대학 관계자는 “수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이 높아진다면 비수도권 대도시에서 웬만큼 공부한다는 학생들은 수시보다 수능 준비에 올인해 ‘인 서울’을 노릴 것이다”면서 “보통 지역 대학이 정시에서 미달이 발생했지만, 올해에는 수시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도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교육부의 지방대학 육성 기본계획을 두고 “이번 방안으로 벼랑 끝에 놓인 지방대가 회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면서 “정권 말기에 내놓은 공허한 계획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며 일침을 가했다. 연구소 역시 전체 대학 정원 감축을 현재의 지역 대학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았다.

대교연에 따르면 수도권 대교모 대학의 정원감축을 유도한 정부는 노무현 정부(전체 7만 1134명 감축)가 유일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때 감축한 정원 3만 6164명 중 대부분은 비수도권 대학과 전문대에 집중됐다. 박근혜 정부 때도 정원 6만 614명을 줄였는데, 이중 76.7%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인원을 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대학 정원 감축 규모는 1만여 명으로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최저 수준이다.

대교연은 보고서에서 “법정 기준에도 못 미치는 교육여건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수도권대학이 상당수며, 이들 대학에는 세칭 ‘일류대학’이라 불리는 서울 대규모 대학도 포함돼 있다”면서 “교육 여건이 열악함에도, 수도권에 위채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 모집이 용이하다면 그 자체가 수도권 대학 도태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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