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입댄 적 없는데…” 폐암 환자 25%가 비흡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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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흡연자가 전체 폐암 환자의 25%에 달할 정도로 비흡연자 폐암 발생이 늘고 있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호흡기내과 이현경 교수가 폐암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하고 있다. 부산백병원 제공

#1. 54세 여성 A 씨는 최근 건강검진 때 촬영한 가슴 엑스선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오른쪽 폐에 2cm 크기의 혹이 발견된 것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폐암 가능성이 높아 조직검사를 받았고, 결국 폐선암을 진단받았다. 이제까지 큰 병 한 번 앓은 적 없고 술·담배도 가까이 한 적 없는데 폐암이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전이가 없는 1기로 판정나 폐 일부 절제 수술을 받았다.

#2. 고혈압 외 특별한 병이 없던 60세 여성 비흡연자 B 씨. 석 달 전부터 허리와 오른쪽 어깨가 아파 진통제를 먹고 물리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허리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후 암이 척추에 전이된 것 같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큰 병원을 찾았다. 3차 병원에서 검사받은 결과 폐암이 허리, 어깨 등 뼈에 광범위하게 전이된 상태가 확인됐다. 수술은 불가능했고 항암치료와 함께 통증이 심한 부위에 방사선치료를 권유받았다.

간접흡연·직업성 유해물질 원인
가족력 있으면 매년 검진 필요
저선량 흉부CT, 비용도 저렴
유전자 이상 땐 표적치료제로
부작용 있지만 완화할 수 있어

■폐암 환자 중 비흡연자 25%

국내 암사망률 1위의 치명적 질병인 폐암. 남녀 모두에서 암사망률 1위이니 남성만 주의해야 할 병은 아니다. 폐암 하면 떠오르는 건 흡연이다. 1, 2번 사례처럼 평생 담배를 피워 본 적 없는 이들도 폐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비흡연자 폐암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전체 폐암 환자의 25% 정도가 비흡연자라는 보고도 있다.

비흡연자에게 폐암은 왜 생기는 걸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간접흡연, 직업성 유해물질과 실내외 오염물질 노출, 유전적 소인 등이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간접흡연, 석면, 크롬, 비소, 카드뮴, 규소, 니켈,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벤조피렌 등)와 같은 유해물질과 폐암 사이의 연관성은 입증된 바 있다. 디젤 연소 후 발생하는 연기도 이미 발암물질로 규정돼 있다.

사람이 위험인자를 모두 피할 수는 없으나, 노출을 줄일 수는 있다. 가정과 직장에서 간접흡연을 줄이는 것은 물론 대기오염이 심한 날엔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 외출하게 되면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실내에서 조리할 경우엔 자주 환기해 실내공기오염을 줄이도록 한다.



■유해물질 노출 종사자 매년 검진해야

유해물질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 종사자는 법적으로 폐암 관련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개인사업장 종사자는 증상이 없더라도 스스로 검진받도록 해야 한다. 유전에 의한 발병 가능성도 있어 부모·형제나 가까운 친척 중 폐암 환자가 있다면 검진을 조기에, 자주 받을 필요가 있다. 폐암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건강검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호흡기내과 이현경 교수는 “국가검진은 2년에 한 번이므로 위험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이거나 폐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매년 검진받을 것을 추천한다”며 “비흡연자 폐암 뿐 아니라 모든 폐암은 초기에 무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3·4기라도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가 많아 검진을 게을리하면 크게 후회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국가폐암검진은 하루 한 갑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비흡연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폐암검진에 이용되는 저선량 흉부CT는 방사선 노출량이 일반CT의 5분의 1 수준이고 비용도 저렴하다. 흉부 엑스선보다는 폐암 조기발견 확률도 높아 비흡연자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



■유전자 이상부위 공격 표적치료제

비흡연자 폐암은 거의 대부분 비소세포폐암 중 선암으로 진단되며, 암조직을 유전자 분석했을 때 4분의 3 정도에서 유전자 이상이 발견된다. 전이가 광범위하게 진행된 채로 발견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환자에겐 표적치료제라는 약제를 사용한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표적치료제 처방 가능 표적 유전자는 EGFR, ALK, ROS1, BRAF 등이다.

표적치료제는 암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 이상부위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암이 커지고 전이되는 것을 막아주고, 정상 세포에는 최소한 영향을 주는 약제다. 부작용이 없지 않지만 일반 항암제처럼 구토, 탈모 등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부작용은 드물다.

이현경 교수는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용량조절이나 부작용치료제로 대부분 줄일 수 있어 부작용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보험이 적용되는 표적치료제 외에 임상시험이 가능한 표적치료제도 있기 때문에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기관을 찾아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대하던 표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환자는 크게 실망할 수 있으나, 표적이 없더라도 선암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일반 항암제(세포독성 항암제)가 있으니 포기하면 안 된다. 일반 항암제도 종류가 다양해 1차 항암치료에서 효과가 없더라도 2차, 3차 약제로 변경하면서 치료를 계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적치료제든 일반 항암제든 치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기본체력, 의지, 가족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기초체력이 좋지 않으면 모든 치료를 잘 견딜 수 없고 예후도 나쁠 수밖에 없다.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걷기 등 규칙적인 운동으로 근력과 체중을 유지하는 게 치료를 견디는 비결이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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