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등급 낙동강 물, 지금도 특수 처리해 ‘억지’ 생활용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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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페놀 사태 30년] 상. 여전히 불안한 먹는 물

30년 전 페놀 함유 폐수를 낙동강에 무단 배출한 두산전자 구미공장 전경(왼쪽)과 다사수원지 취수장에서 강물을 채수(가운데)하는 모습. 페놀에 오염된 낙동강 중상류의 물에 금붕어를 넣어 실험(오른쪽)한 결과 3시간 만에 금붕어가 죽었다. 부산일보DB

1991년 3월 14일 경북 구미공업단지의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30여 t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국내 허용치 22배, 세계보건기구 허용치의 110배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페놀은 취수장으로 유입됐고, 오염 물질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 부산 등 하류까지 영향을 줬다. 이후 조사 결과 두산전자에서 5개월간 370여 t의 페놀이 방류된 게 확인됐다.

일명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의 전말이다. 낙동강 수질 개선과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낙동강은 불안하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두산전자 페놀 방류 사건 계기
안전하게 마실 물 공감대 생겨
1991년보다 산단 2배 더 늘어
물금취수장 5년 연속 TOC 3등급
일반 정수처리하면 공업용수
광역단체,취수원 다변화 합의
부산, 신규 지역과 물밑 접촉

■공업용수로도 쓰기 어려운 식수

부산 시민 상수원인 양산 물금취수장. 환경부의 물환경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1일 이곳에 공급한 낙동강 물의 수질 측정 결과, TOC(총 유기 탄소량) 값 7.7을 기록했다. TOC는 고분자 오염물까지 측정 가능해, 기존 수질 측정 방식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표다.

TOC 값이 6~8 사이에 있으면, ‘수질 나쁨’으로 분류되는 5등급 물이다.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5등급 물은 고도 정수로도 모자라 특수 처리해야 겨우 공업용수로 쓸 수 있다.

이날뿐만 아니라 지난해 7월 27일 측정에서도 TOC 값은 6.2였다. 2018년 3월과 8월, 2019년 9월 측정에도 TOC 값이 6.2~6.8로 나오는 등 부산 시민은 종종 5등급 물을 정수해 마신다. ‘약간 나쁨’으로 분류되는 TOC 4등급(5초과 6이하)은 더 자주 측정되는데, 역시 고도 정수 뒤 공업용수 정도로 쓸 수 있는 수질이다.

1년 전체로 봐도 낙동강 수질은 먹는 물로 부적합하다. 지난해 물금취수장 TOC 연 평균값은 4.4로 3등급 수준(4초과 5이하)이었다. 낙동강 외 다른 지역의 취수원들은 모두 TOC 값 1~2등급을 유지한다. 반면 물금 취수장은 2016년부터 5년 연속 TOC 3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3등급의 물은 고도정수 처리를 해야만 생활용수로 이용할 수 있고, 일반적인 정수 처리를 하면 공업용수로 써야 한다. 부산 시민은 원칙적으론 먹는 물로 쓰기 어려운 낙동강 물을 특수 처리해 ‘억지’로 생활용수로 쓰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취수원보다 정수 과정이 길어지고 화학적 처리도 많아진다. “부산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나오는 이유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다이옥산, 올해 초에는 과불화화합물 등이 물금취수장에서 검출돼 불안감을 키웠다. 기준치 이하라고는 하지만 모두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TOC 기준 수질 악화 현상과 빈번한 화합물질 검출의 원인으로 공장 폐수가 지목된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에도, 낙동강 일대 산단 수는 2002년 102곳에서 현재 264곳으로 2배 넘게 늘었다.



■물 문제 해결 기대감 높아져

페놀 방류 사건 이후 30년간 안전한 물에 대한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역 간 갈등이다.

지난해 8월 환경부는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 중간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보 개방 등으로 낙동강 수질을 끌어올리면서, 합천·창녕·구미 등지에 신규 취수원을 설치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단기간에 강 수질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부산처럼 낙동강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경우 낙동강 본류 외에 타지역의 용수를 끌어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취수원이 다양해지면, 녹조 등으로 낙동강 수질이 급격히 악화해도 대체 용수가 있어 안정적으로 먹는 물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취수원 다변화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신규 취수원으로 지목된 지역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에 따른 개발 제한과 해당 지역의 농업용수 고갈 우려 등이 이유로 꼽힌다.

다행이라면 지역 간 합의안 도출이 다른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척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전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부산은 물론 경남, 대구 등 광역단체 단위에서는 취수원 다변화에 대해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다. 환경부도 적극적인 편이다. 환경부는 현재 신설 취수원 지역의 보호 구역 지정에 따른 제재를 최소화할 방안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도 신규 취수원 대상지의 농산물을 일괄적으로 구매해 주는 대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생명그물 이준경 대표는 “새 취수원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건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페놀 유출 사건부터 정확히 30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답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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