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국가 손해배상 앞으로 더 속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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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최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고 박인근 원장의 무죄 판결에 대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 규명과 손해배상 청구는 오히려 더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대법원이 1989년 당시 박 원장의 무죄 판결을 파기해 달라는 비상상고는 기각한 반면, 이 사건을 국가의 묵인과 비호 아래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 사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로서는 비상상고가 기각돼 “이게 나라냐”라는 분통을 충분히 터뜨릴 만하다. 그럼에도 국가의 진상 규명과 배상 책임이 인정된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빠른 후속 조치가 요구된다.

대법 ‘원장 무죄 판결 파기’ 비상상고 기각
국가 책임 인정, 과거사위 규명 활동 중요

검찰의 비상상고 내용은 32년 전 박 원장이 당시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던 특수감금 등 혐의를 파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역사에 남을 정도로 중대한 인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무죄 판결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요구는 당연했고, 판결에서도 이런 점은 충분히 수용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대법원은 당시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이 법령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법리적으로 볼 때 예전 대법원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박 원장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지우려던 피해자들로서는 대법원의 판단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원장의 무죄 판결이 파기되지는 못했지만,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법원은 법리적으로는 무죄 판결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직적 인권 유린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은 확실히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본질이 국가 기관이 주도한 대규모 인권 유린 사례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 피해자·유가족의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주문했다. 판결 취지로 볼 때 당연한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규명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직접적으로 위원회에 이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과 진상 규명을 촉구한 이상 앞으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지난해 말 출범한 제2기 과거사위원회는 이미 1호 안건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출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던 인권 유린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할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만큼 과거사위원회는 사명감을 갖고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다. 군사정권의 인권 만행을 한 점 의혹 없이 파헤쳐 우리 역사의 반면교사로 남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진정한 위로와 배상일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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