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산 정치 중심은 부민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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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기념관 ‘부민동의 역사와 공간’ 출간

“결혼 초 잠시 하단 근처에서 살았던 것을 제외하곤 부민동에서 사는데, 동네가 조용해서 좋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소방서고요. 주민센터(동사무소)도 그 자리에 그대로예요.” -부민동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전정순(1959년생) 씨.

“시아버지가 1947년도에 개업하고, 이제는 아들이 3대째하고 있죠. 우리 집에는 내가 알기로는 대통령만 안 오고 다 온 거 같아요. 대통령도 왔다 갔는지도 모르지. 연예인들은 무지하게 많이 왔고요.” -부민동을 지키고 있는 18번 완당집 이재선(1954년생) 씨.

오랫동안 부산 서구 부민동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들이다. 자신들의 삶터와 삶의 흔적들을 이렇게 전한다.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이 최근 부민동 일원의 도시 형성 과정과 역사, 주민들의 삶을 다룬 보고서 <부민동의 역사와 공간>을 펴냈다.

책은 2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임시수도기념관의 연구총서다. 임시수도기념관은 그동안 보수동책방골목, 광복동 등 부산의 장소와 관련된 기록 작업을 해 왔다.

이번에 발간된 책은 부민동 일대 역사적 흐름과 공간적 특성을 입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물이다. 부민동 토박이들의 구술조사를 병행해 그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도 함께 담았다. 조사 대상지가 부민동이라고 하지만, 그 범위는 현재 부산시 서구 일원으로 부민동, 대신동, 아미동, 초장동, 충무동, 남부민동, 암남동 등이 포함됐다. 1914년 부민동에서 남부민동, 토성동, 부용동, 아미동 등으로 분리·확장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부민동의 형성과정과 지역의 역사적인 흐름을 시기별로 정리했다. 이중 일제강점기 이후 부민동이 정치 중심지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부민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이래 각종 공공기관이 집중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산의 정치 중심지로 부상한다. 1909년 부산재판소가 설치된 이래 1925년에는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이 이전해 왔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은 임시수도가 되었다.

2장은 조선시대 초량왜관 설치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부민동의 공간적 변화와 장소적 특성, 주요 건축물의 건립과정들을 다양한 지도와 도면 등을 통해 정리했다. 조선 말·일제강점기 부민동 일대에는 주요 공공기관인 경상남도 도청, 지방법원, 병원, 형무소를 비롯해 부산 최초 근대기 공설시장, 장묘시설, 공원, 공설운동장, 수원지 등이 있었다. 책엔 경상남도지사관사 신축 설계도, 부산지방법원청사 공사 설계도 등 상당수 공공건물의 설계도가 함께 수록돼 있다.

3장은 부민동을 터전으로 살아온 주민들이 경험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과 동네의 변화상을, 참여자들의 직접적인 구술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구술 참여자는 8명의 주민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정착했거나 부모님 대에 정착해 부민동을 터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이들이다. 책엔 전정순 씨가 동래에 위치한 이사벨여고를 다니게 돼 장시간 버스를 타야 하는 고통을 당한 이야기, 허홍욱(1946년생) 씨가 야구하다 형님한테 발각돼 야단맞은 이야기, 윤지선(1951년생) 씨가 보수천에서 빨래를 해 머리에 이고 가다가 고생한 이야기 등 개인사도 전한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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