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대통령 직책 명칭을 변경할 수 없을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大統領)선거가 1년도 안 남았다.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들의 움직임과 대선 구도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다음 달 7일 치러질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 열기도 뜨겁다. 여야 정치권은 이번 보선을 차기 대선의 향방을 가늠하는 전초전으로 판단해 소속당 후보의 당선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시장 후보들 중에는 청와대 입성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는 출마자도 보인다.

선거 정국인 이 시점에 발칙하고 도발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책 이름은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이 명칭을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은 없을까? 이유는 대통령이란 말에서 풍기는 어감이 너무나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오늘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다.

막강한 권력으로 국민에 군림 인상
위상과 권한, 제왕적이란 비판 많아

이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시대
대통령 용어는 시대정신에 역행해

일제 잔재·중국 군대 용어라는 지적
국가 발전·국민 행복 위한 개명 필요


국어사전은 대통령을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 등으로 서술해 놓고 있다. 한문으로는 ‘큰 대’, ‘거느릴 통’, ‘다스릴 령’ 세 글자로 이뤄져 있다. 한자로 살펴본 의미는 국어사전의 뜻풀이에 비해 매우 위압적이다. 왕조 시대의 추상같이 지엄한 절대 군주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건국 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부터 서슬 퍼런 유신체제와 군부정권에 이르기까지 제왕 같은 통치 행위가 이뤄졌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김대중 정권 출범 직전까지 대통령 사진이 전국 교육기관과 관공서의 실내 높은 곳에 잘 보이게 부착된 관행이 이어졌다. 학생과 공무원들이 각하의 존영(尊影·사진의 높임말)을 보며 업적을 기리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김일성·정일·정은 3대 사진을 우상화하는 북한과 다르지 않다. 한자를 애용하던 시절엔 존엄한 대통령을 모욕한 괘씸죄에 걸려 낭패를 본 언론사가 여럿 있다. 몇몇 신문사는 대통령 기사에서 ‘犬(견)統領’으로 잘못 인쇄해 정간되거나 사장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1975년 국가 안전과 이익을 위해 형법에 포함됐다가 6월 민주항쟁 이듬해인 1988년 폐지된 ‘국가 모독죄’는 ‘대통령 모독죄’로 간주될 정도였다.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을 겸한 대통령이 국가와 동일시되는 가운데 국민 위에 군림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을 탄압하기도 했다. 1980년 광주의 시민 학살이 대표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거대 여권의 힘에 눌린 국민의힘 지도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4년 만에 왕이 됐다”고 비난하는 바람에 ‘임금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현행 대통령제는 측근 세력이 흑심을 품고 대통령 눈과 귀를 가릴 경우 권력이 남용되고 국정 농단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법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법조계 법비(法匪)처럼 정·관계에도 민생은 뒷전인 채 호가호위하며 기득권 유지에 치중하거나 부정부패를 일삼은 무리가 존재하지 않았던가.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등이 공동 집필한 책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11명의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과도한 권력욕이나 주변 사람들의 탐욕 탓에 말로가 불운했다고 진단한다. 개인뿐 아니라 국민의 불행이자 국가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야권과 국민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해지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대통령에게 몰린 권한 축소와 권력 분산이 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개헌 문제를 꺼내기 일쑤여서 극심한 정쟁거리에 그친다. 오히려 대선철만 되면 온 정치권이 “정권 재창출”과 “정권 심판”을 외치며 대권 잡기에 혈안이다. 대통령이란 용어 자체가 막강한 권위와 위상을 가진 데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권력욕을 자극하고 집권 의지를 부추기는 것일 테다.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직책을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국가 운영을 위임받은 자리’로 새롭게 정의할 수 있겠다. 제도 개선이 요원한 상태에서 시대착오적인 대통령 직명만이라도 현실에 맞게 바꿀 수는 없을까. 미국 대통령은 수평적 리더십이 함축된 회의 주재자, 의장이란 의미의 ‘프레지던트(president)’로 불린다.

19세기 후반 일본이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번역해 우리가 이어받은 사실이 명칭 변경의 당위성을 높인다. 일본에서 ‘統領’은 ‘사무라이 집단의 통솔자’라고 한다. 게다가 중국 청나라 군대 고위 직책의 하나가 ‘통령’이었다. 일제 잔재와 군대 용어 청산 차원에서도 검토할 만하다. 최고 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애초부터 국가 발전과 번영에 헌신하며, 국민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데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심어 줄 수 있는 작명이 절실하다. 정부와 국회, 학계의 관심이 요구된다.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