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죽을 때까지 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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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보면서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생각한다. 이달 초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19세 여성 치알 신이 ‘다 잘될 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섰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미얀마 군부는 공동묘지에 묻힌 치알 신의 시신을 도굴해 갔다. 이 사건은 ‘우 탄트 시신 탈취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1974년 11월 랑군(현재는 양곤)대학 학생들이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인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우 탄트의 공개 장례식을 거행했다. 학생들은 그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학생회관 자리에 묻었지만, 군대가 도착해서 잔인하게 수십 명을 살해하고 우 탄트의 시신을 탈취했다. 학생들이 항의를 계속하자, 군대는 다시 발포하며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1988년 상황은 더 심각했다. 8월 8일 오전 8시 8분,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전국적 총파업이 시작된다. 그날 오후 군부는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엄포했다. 군중은 늘어났고, 사람들은 “평화 시위”라고 외쳤다. 수천 명이 군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자정 직전, 사람들이 국가를 부르고 있을 때 군대가 총격을 시작했다. 이 ‘8888 민주화운동’은 야만적인 군대에 무너졌고, 군부는 수천 명의 민중을 죽이고 이후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하게 된다.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지 40일이 흘렀다. 시민들은 연일 거리로 나와서 저항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군경의 진압은 갈수록 난폭해지고 있다. 벌써 60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18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거나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본격적인 집단 학살극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충격적인 증언까지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미얀마 군부의 명령을 따를 수 없어 인도로 월경한 경찰관이 “죽을 때까지 시위대를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시를 거부한 타 뼁(27)은 “경찰 규정상 시위대를 해산할 때는 고무탄을 쏘거나 무릎 아래만 쏴야 하지만, 죽을 때까지 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타 뼁은 그렇게 거부하고 도망갔지만 다른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1980년 오월의 광주를 떠올렸다. 그때 광주에서도 누군가 ‘사살 명령’을 내렸고, 누군가는 ‘실행’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나도록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5·18 가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용기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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