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아름다움’ 양가적 미학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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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메이플소프 국내 첫 개인전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아름다운 것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철저히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것들을.

미국의 현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개인전 ‘로버트 메이플소프: More Life’가 국제갤러리 부산점(망미동)과 서울점 K2(삼청동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메이플소프는 20세기 후반 비평가와 예술가들에게 호평받은 사진작가인 동시에 사회적 관습을 벗어난 파격적 사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국제갤러리 부산·서울 동시 개최
“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다”
1980년대 흑인 남성 누드 등
사회적 관습 탈피한 파격 촬영
꽃 클로즈업, 신체 은유 표현도

“아름다움과 악마성은 같은 것이다.” 메이플소프의 이 말은 그가 추구한 사진 세계를 대변한다. 메이플소프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핫셀블라드500 카메라로 탐미적 정물 사진과 섹슈얼리티를 실험한 사진을 찍었다. 당시 금기시됐던 흑인 남성 누드, 사도마조히즘, 게이 서브컬처 등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메이플소프 첫 개인전으로, 그의 작품 전체를 들여다보는 자리이다.

서울점 K2 1층에서는 ‘성스럽고 세속적인’을 뜻하는 부제목 아래 완결성을 추구하지만, 자극적 소재를 사용하는 메이플소프의 ‘양가적 미학’이 담긴 작품을 소개한다. ‘켄 무디와 로버트 셔먼’은 백인과 흑인이 등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다. 전신 탈모증을 가진 두 사람의 모습은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통해 미학적 대조를 이뤄냈다.

배우 리처드 기어,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부와 명성, 성공에 대한 갈망이 컸던 메이플소프는 유명인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특히 펑크록 가수 패티 스미스는 한때는 연인으로, 메이플소프가 동성애자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은 이후에는 동지로 ‘예술가 메이플소프’의 성장에 영향을 줬다.

패티 스미스와 함께 메이플소프에게 자주 사진을 찍힌 사람이 리사 라이언이다. ‘여성 보디빌더’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근육질의 몸을 가진 라이언은 메이플소프의 모델로 되어 150여 장의 사진을 남겼다. 2층에 전시된 라이언의 뒷모습 사진은 강한 몸에 있어 성별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완벽한 대칭을 이룬 흑인 남성의 뒷모습 누드까지 메이플소프의 사진에는 ‘야하고 거칠지만, 미적으로 아름다운’ 독특함이 있다.

서울점 2층 ‘다크룸’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선 사진들을 전시한다. 갤러리 측에서 ‘성적 표현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람에 참고하시라’는 안내문을 걸었을 정도이다. 비밀스러운 사도마조히즘 의식을 찍은 사진, 채찍을 항문에 꽂고 정면을 응시한 자화상 등 메이플소프의 ‘X 포트폴리오’ 연작들이 소개된다.

부산점 전시는 서울점 전시보다 상대적으로 얌전한 사진들로 구성된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F1963에 갤러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다이-트랜스퍼 컬러사진 등 사진 물성을 실험한 작품이나 후기의 꽃 사진과 일부 초상·정물 사진을 전시한다. 이 중 꽃 사진은 작가 본인이 선호한 작업은 아니지만 고가로 판매가 잘 되었던 시리즈이다. 클로즈업한 꽃 사진을 통해 메이플소프는 인간의 성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메이플소프는 1989년 마흔둘의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More Life’에서 관람객은 작가의 여러 자화상을 마주한다. 소년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 드래그퀸처럼 연출한 모습, 강인한 남성으로 꾸민 뒷모습, 악마처럼 변신한 모습,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찍은 사진들까지 한 사람 속에 담긴 여러 자아가 드러난다. 경계 밖의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정교하게 담아낸 메이플소프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으로 완결성을 보여준 사진작가였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More Life’=28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051-758-2239)·서울점 K2(02-735-8449).

서울=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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