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접촉자 찾기 ‘한글’ 재난문자, 효과·인권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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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적 접촉자를 찾는 재난문자(사진)를 한국어로 표기해 발송한 부산시가 ‘접촉자 파악’과 ‘이주민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시가 외국인 대상 재난 안내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시는 4일 오후 3시 14분께 ‘2.26(금) 13:03~13:52경 아시아마트에 방문한 외국인(베트남)은 서구 보건소에 연락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이를 두고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카자흐스탄 국적 아크미라(23) 씨는 “외국인을 찾는 문자면 최소한 영어로라도 보내야 하지 않냐”며 의문을 드러냈다.

아시아마트 방문 베트남인 상대
부산시 “보건소 연락” 문자 발송
“외국인 찾는 문자는 영어로” 여론
“국적 표기 혐오감 부추겨” 지적도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이주민 단체는 시가 이주민 접촉자를 찾을 때만이라도 재난문자를 외국어로 보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민과함께’ 정지숙 상임이사는 “한글로 외국인 접촉자를 찾는 재난문자를 보내면 해당 외국인에게 내용 전달이 어렵다”면서 “읽을 줄 모르는 언어로 발송된 재난문자에 이주민들은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19년 기준 7만 7968명이다.

이주민 단체는 재난문자에 접촉자의 국적을 밝힌 것이 이주민 혐오를 키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 상임이사는 “한국인 접촉자를 찾을 때는 나이대, 성별을 밝히지 않으면서 외국인 접촉자를 찾을 때 굳이 국적을 표기할 이유가 없다”면서 “북구가 코로나 낙인으로 힘겨웠던 것처럼 국적을 표기하는 것은 이주민의 우리 사회 적응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한정된 예산과 기술적 한계 때문에 외국인 휴대폰을 특정해 재난문자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난문자는 선택된 지역의 기지국에 신호가 잡힌 모든 휴대폰에 발송되어 국적을 선별해 재난문자를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재난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외국인도 재난정보를 숙지해야 방역 효과가 커진다”면서 “시민들이 피로를 겪지 않도록 동선 겹침이 우려될 때만 영어 재난문자를 발송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부산국제교류재단 ‘Life in Busan’ 앱을 통해 3월 중순부터 재난문자를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시범 운영된 앱의 다운로드 건수는 400여 건에 불과하고 앱 실행 횟수도 2만 8000여 회에 그친다.

부산시는 앱 이외에도 재난문자가 외국인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해명했다. 부산시 이소라 시민방역추진단장은 “외국인 접촉자를 찾을 때 외국어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며 “국내 외국인 커뮤니티와 연계해 접촉자를 찾는 방안을 마련해 방역 체계도 강화하고 이주민 권리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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