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감정 배설식 코칭, 선수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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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스포츠부장

“그랬어 안 그랬어” “나 참, 답답하네,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뭐랬어?” “그러면 안돼! 안된다고” “짤리고 싶어!”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이런 말을 일방적으로 퍼붓는다면? 짜증 섞인 목소리와 위협적 눈빛까지 곁들인다면? 손가락질을 하며 단발마 비명처럼 “야!” 또는 “너!”라고 부른 뒤 화난 얼굴로 힐란한다면?

프로 선수들 학폭 파문 계기
권위적 지도방식 뿌리뽑아야
폭력적 소통 관행 후유증 심각
분노인간화·가해 악순환 우려

명백한 폭력이다. 일방적인 분노, 짜증, 원망 등의 감정을 가득 담은 의사 전달은 언제나 정당하지 않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직책 때문에 상대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직장에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중에서도 학대에 해당된다. 요즘은 군대와 직장 등 대부분의 집단에서 이런 ‘감정 배설식’ 지적이나 대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위 사례와 같은 폭력적인 의사 전달이 여전히 용인된다. 이를 손쉽게 엿볼 수 있는 것이 작전타임의 격앙된 의사소통 방식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다. 경기에서 지고 있는데, 선수들이 생각처럼 뛰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감독 등 코칭스태프 입에서 좋은 말과 몸짓, 표정, 눈빛이 나오겠느냐고. 심지어 이런 것도 모두 작전이라고. 스포츠 흥행을 위해 다소 과격한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말과 감정이 작동하고 축적돼 후유증을 확산시키는 일련의 메카니즘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런 반문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 스포츠계는 일부 선수들의 학교폭력 전력 때문에 비난 받고 있다. 일부 작전타임에서 쏟아지는 응징·분풀이성 말과 감정들은 스포츠계에 만연하거나 만연했을 뿌리 깊은 폭력성을 내비친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경기장이 아닌 그들만의 공간에서는 더 거친 폭력적 말이 오간다는 의구심도 갖는다.

작전타임의 폭력적 어록을 볼 때마다 청소년 범죄를 떠올린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폭력 등에 연루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사정을 되짚다보면 문제 부모가 있는 문제 가정에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 특히 청소년들이 갖고 있던 폭력적 감정과 말투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문제 가정, 문제 사회는 있어도 문제 아동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은 전염된다. 좋은 감정이라면 다행이지만 나쁜 감정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말은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감정도 실어 나른다. 말은 표정, 목소리의 결, 몸짓, 눈빛 등과 한몸을 이룬다. 쉽게 말해 말은 온갖 감정들의 집합체인 셈이다. 분노한 마음이 내뱉는 말에는 짜증, 원망, 질책 등 날선 감정들이 가득 담긴다. 그래서 말은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 우리는 항상 말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말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감정은 생각보다 항상 빠르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가급적 말을 아끼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런데 말에 실려 타인에게 전해진 감정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나쁜 감정들이 만든 상처는 다시 나쁜 감정을 양산한다. 부부싸움 때문에 분노한 부장이 과장의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내면, 그 과장이 다시 시답잖은 이유로 사원들을 비난하는 식의 메카니즘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을 계속 다치는 사람에게 찾아올 후유증이다. 자신도 모르게 우울, 억울함, 질투, 분노, 무기력 등 더 나쁜 감정들에 의해 서서히 점령 당한다. 착한 학생들이 폭력적 환경에 계속 노출될 경우 분노형 인간으로 변질되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지어 험악한 말과 감정 폭력에 시달린 어린 선수들은 학폭 가해자가 되거나 재능을 살리지 못한 채 운동을 그만둘 우려도 높다.

한국 사회는 유교와 군사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상급자 지시에 복종하고, 때리면 맞아야 하는 시절을 겪었다. 과거, 상당수 운동선수들도 크고 작은 폭력을 경험했다. 그 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런 악습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철저하게 바꿔야 한다.

내 아이를 내가 야단치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반론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듯 학생·프로 선수들도 감독이나 단장, 담당 지도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네가 잘하면 이런 말을 안 들어도 되잖아’ 라는 식의 포장은 더이상 명분이 될 수 없다.

일부 선수들의 학교폭력 문제를 계기로 스포츠계에 더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전수 조사만 할 것이 아니라 파괴적 갈등을 유발하는 권위주의적 팀 운영과 지도 방식을 근절할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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