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뻔뻔한 인간 (호모 쉐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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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있다.

약 4만~5만 년 전에 탄생해 구석기 시대를 열었다는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는 육체적으로 강하지도, 지능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큰 집단을 이루면서 협력과 유대, 의사소통 등을 중요시한 강점 때문에 인류 최후의 승자가 됐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란 뜻의 호모 로??스(Homo loquens),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손을 사용한다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개념도 있다.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도 최근 SNS와 아이돌 문화 트렌드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런 개념과 발견은 인류가 지성의 힘으로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조망한 진화의 역사다.

최근 홈페이지에 ‘든든한 국민 생활 파트너’라고 소개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직자들 덕분에 신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고 있다. 바로 ‘뻔뻔한 인간’이란 뜻의 ‘호모 쉐임리스(Homo shameless)’이다.

이는 여성학자인 정희진 박사가 제기하고,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그의 저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를 통해 확산시킨 개념이다. 정 박사는 “누가 더 두꺼운 얼굴을 가졌는가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세상. 이것은 앎과 모름의 싸움이다. 그들은 죄의식과 불편 없이 전진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성폭력은 기본이고, 사기, 계급주의, 학벌주의, 연줄 문화, 약자에 대한 모욕, 이중성…. 사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호모 쉐임리스(뻔뻔한 인간)’의 시대다”라고 일갈했다.

LH 투기 혐의자 상당수가 부장급 이상이라고 한다. 높은 연봉과 보너스,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공공기관, 한번 입사하면 떠나기 싫은 신의 직장이다. 그들에게 LH 사원증은 ‘국가를 상대로 한 불로소득 라이선스’에 불과했다. 전직 LH 사장으로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라고 변명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호모 쉐임리스’의 끝판왕이었다.

화난 농민들이 LH 진주 본사에 ‘한국농지투기공사’라는 현수막까지 붙였다고 하니….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 부동산 정책의 표류로 애꿎은 서민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강준만 교수의 지적처럼 이제는 ‘호모 쉐임리스’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뻔뻔한 인간’에 대한 강력한 수사가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를 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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