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시장 선거에 날아든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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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1970~1980년대엔 이른바 ‘고무신 선거’가 판을 쳤다. 주로 여당 후보들이 투표 전날 집집마다 고무신 같은 생필품을 돌리면서 매표(買票)를 한 것이다.

당시 관권·금품선거와 물량공세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던 야당은 ‘고무신 돌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대신 이렇게 하소연했다. “고무신은 받더라도 표는 제대로 찍어달라”고. 입을 것,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민초들이 모처럼 얻은 공짜 선물을 빼앗을 순 없었고, 선거는 해야겠기에 나온 눈물겨운 대책이었다. 이런 전략 덕택인지 그나마 야당은 암울한 시기에도 명맥을 유지했다. 가끔식은 ‘○○당 돌풍’을 일으키면서 군사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신공항, 부산시민이 당연히 받아야 할 채권
‘고무신’ 받더라도 평가와 선택은 냉정하게
민주주의 기본원리 작동하는 보궐선거 돼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에서 ‘고무신’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은 물론이고 노점상, 생계위기 가구, 근로 빈곤층의 손에 곧 쥐어진다.

부산시민들이 20년 넘게 갈망했던 가덕도 신공항은 특별법이라는 날개를 달고 금방이라도 첫 삽을 뜰 기세다. ‘관권 선거’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시민들이 고마워해야 할 선물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할 채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5석만 주면 신공항 이뤄내겠다”고 약속했고, 부산시민들은 딱 그만큼 지지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도 신공항 공약을 내걸었고 결국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약속을 이제야 실천한 것 뿐이다. 오히려 정권 초반 국토교통부가 심술을 부릴 때 제대로 단속했더라면 벌써 착공에 들어갔을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있다. 그러므로 수도권이나 대구·경북 사람들이 가덕도 신공항을 ‘관권’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사람의 표를 받기 위해 집권여당이 발행한 ‘약속어음’이 아니라, 과거의 채무에 대한 뒤늦은 상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빌미로 지지를 호소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부산 가덕도에서 열린 부산시장 후보 경선대회에서 “민주당 사람이 시장이 됐을 때 (신공항의) 역사적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야당 후보가 부산시장이 되면 신공항 추진이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는 으름장이다.

따라서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후보 선택의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고무신은 받았지만 투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 보궐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공정한 자세다. 고무신 뿌린 여당을 선택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번 선거의 투표 기준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돼야 한다. 집권세력이 얼마나 잘했는지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냉철하게 성적을 매기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지 4년이 지났다. 그동안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국민들의 다수가 현 정부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번 보궐선거 투표에서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잘 이끌었다면 여당을, 이런 식의 국정운영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야당을 찍으면 된다.

다음으로는 후보의 역량을 따져봐야 한다. 누가 부산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근본적 원인은 각별히 생각해봐야 한다. 여당은 불만이겠지만, 그들이 공천한 부산시장 때문에 267억 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추계)에 달하는 보궐선거 비용을 부산시민들이 부담한다. 대한민국 제2도시의 시장이 저지른 성범죄 때문에 부산시민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 자존감 추락 등 무형의 손실도 적지 않다. 유권자들은 왜 이번 보궐선거가 실시되는지 회고하는 투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후보를 공천할 때 유권자 무서운 줄 안다.

이제 보궐선거가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 유권자들이 이번 투표의 선택 기준을 가덕도 신공항과 재난지원금으로 잡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고무신’이 마음에 걸린다고? 그건 부산 사람들이 수도권에 비해 차별받고, 국가의 정책적 혜택에서 소외돼 수 십년 동안 고생한 대가로 받는 당연한 보상이다. 나 보란 듯 신고 다니되, 표만 제대로 찍으면 된다.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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