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생존에 지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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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래 신라대 글로벌 경제학과 명예교수

며칠 전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추계인구를 살펴보았다. 추계인구는 센서스 조사와 주민등록 인구를 토대로 추정한 인구로 실제 인구에 좀 더 근접한 개념이다. 추계인구는 이름 그대로 미래의 인구 추이를 예측하는 데도 사용이 된다. 추계인구를 갑자기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지난 연말 나왔던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 때문이다.

작년을 전기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태어난 아이는 1000명 밑으로 떨어졌다. 40년 전 한해에 8만 명 가까이 부산에서 태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파멸적인 수준이다.


지난해 이후 인구 감소 본격 시작
2066년께는 4000만 명 밑돌 듯

삶의 조건·생활양식 인구 조절 관건
경쟁 지나치면 자식보다 자신 치중

재탕 삼탕 수준 저출생 대책 겉돌아
젊은이 생존 압박 줄이는 것이 핵심


추계인구의 저주를 좀 더 살펴보자. 지금부터 꼭 45년 뒤인 2066년에 우리나라 인구는 40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5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총인구의 23%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2019년 추정치이니 사실 이조차 낙관적인 예측이다. 이쯤 되면 그저 그런 인구 대책은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유목민족은 농경민족보다 인구증가율이 항상 크게 낮았다.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민은 먼저 태어난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뒤 아이를 갖는 것을 연기하여야 했다. 그리하여 유목민족은 농경민족보다 아이의 터울이 두 배나 길었다. 삶의 조건과 생활양식이 인구를 조절하는 핵심 요인인 셈이다.

이런 사실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한국은 지금 결혼과 아이를 갖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힘든 사회라는 것을 시사한다.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고 아픈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들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우선 모두가 수긍하듯이 한국은 경쟁이 너무 심한 사회다. 경쟁에서 한번 도태되면 낙오자가 되어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다. 경쟁의 중심에는 학벌과 서울중심주의가 있고, 이것은 지방과 농촌에 대한 끊임없는 비하와 차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차별이 경쟁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고, 승리자들은 끼리끼리의 문화를 굳혀 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좋은 학벌을 얻고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사활을 건 경쟁을 한다. 취업의 관문을 돌파하였다고 하여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자기계발과 사회적 관계 등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꼰대 문화가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힘들다. 게다가 여성들은 아이와 경력 사이에서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존경쟁에 허덕여야 하는 사회에서는 자식을 갖기보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서까지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기에 모든 것을 투입하여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사치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갖는 것은 더욱 생각 밖의 일이 된다.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양육과 교육은 아주 큰 비용이 들어가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주저하는 것은 결국 생존의 압박에 몰린 젊은이들의 자기방어이다.

이러한 저출산에 대해 정부가 보이는 태도는 그동안 수많은 정책을 내놓고 막대한 돈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식이다. 끔찍한 저출산에 대해 정부는 얼마 전 위원회를 만들어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보아도 뻔한 정책들이 재탕 삼탕으로 나올 것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역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정리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면 정말 대책은 없는 것일까. 돈을 준다고 해서 아이를 더 낳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생존의 압박을 줄여 주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핵심이라는 것 또한 변함이 없다. 우리보다 일찍 저출산의 위기를 겪은 서구를 여행하면서 아이 두 명을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에 나와 있는 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이를 두 명 키우는 사람에게는 나라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준다고 하였다.

돈벌이를 하는 일 못지않게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뾰족한 답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에 침묵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이 안타깝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라도 한번 나설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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