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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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가

작년 12월 1일에 온라인 전자저널에 발표된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의 성 계약’을 읽어보았다. 강사로 일하는 대학의 개인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니 전문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경제학으로 훈련된 법률 이론가’의 논문은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논리적 오류들이 매우 단순하게 드러나 있었다. 즉 태평양전쟁 시기의 특수한 군 위안소 제도를 마치 21세기 도시 한복판에서 동등한 지위의 당사자들이 체결한 고용제도인 것처럼 해석하고 있었다. 선행연구도 부족해 보였다. 당시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해 학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는 시종일관 이 여성들이 미리 선불을 지급받았고, 위험수당을 포함한 높은 급여를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1년이나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자유롭게 위안소를 떠날 수 있는 직업 ‘매춘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 논문 보니 논리적 오류 확실해
전시 군 위안소를 고용제도로 해석
자유의사로 계약한 매춘부 취급

강제된 게 어째서 계약이란 말인가
일본 사과·배상 책임 면제 나쁜 의도
학문 악용한 역사 왜곡 ‘아웃 돼야’


논문 집필자의 교활한 의도가 두드러지는 건 특히 다음의 주장을 통해서이다. (1) 1930년대에 한인 여성들을 속여서 서울의 공장 대신에 군 위안소에 팔아넘긴 모집책들이 부쩍 증가했다. 그런데 이들은 (일본 정부나 군 당국, 또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한국인 모집책들이었다. (2) 고용 계약서를 맺은 당사자 역시 위안소 소유주와 개별 여성들이었다. (3) 위안소 소유주들은 미리 지불한 선금과 함께 높은 급여를 정기적으로 지급했고, 여성들은 이 급여를 저축하거나 고향으로 송금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갔다.

램지어 교수의 정치적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계약 주체와 이행 당사자가 한국인 모집책, 위안소 소유주, 매춘부 여성이므로 일본 정부는 사과와 배상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문을 누구보다도 먼저 비판한 하버드 대학의 석지영 교수는 “강제된 건 계약이라 할 수 없다”라며 논문의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강압적으로 맺은 계약은 정당한 계약이 아니라 ‘노예 계약’이며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뉴요커>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역사학자 테사 스즈키 모리스의 글을 소개한다. 즉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다른 시대, 다른 장소, 그리고 전혀 다른 상황에서 발생한 두 제도인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본에서 행해진 제도(공창제도)와 1930년대와 40년대의 군 위안소 제도”를 “기이하게도”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역사학자 에이미 스탠리 교수 역시 자발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논문에서 언급된 10살짜리 일본인 소녀 ‘오사키’관한 정보를 확인해본 결과, 그 소녀는 군 위안소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 피해자였으며 램지어 교수가 이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제 동원 및 납치로 인해 성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은 유엔과 국제 앰네스티 등이 이미 인정했고, 일본 정부도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이를 수용한 바 있다. 석 교수를 필두로 현재 전 세계의 학자들이 지극히 예외적인 몇몇 사례를 들어서 전체 현상을 일반화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논문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편향적 논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증언자들의 기록물 등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왜곡했다.

며칠 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유족회’에서 피해자들을 ‘위안부’대신 ‘성노예’라고 변경해서 부르자고 공식 요청했다. ‘위안’ 받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게 수습책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학문을 악용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존 마크 램지어 교수, 당신은 지금부터 아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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