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부산~통영서 출렁이는 '음악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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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30년 넘은 기자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도 그중 하나다. 2004년부터 음악 담당 기자로 내리 3년 통영을 다녔다. 봄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통영 바다를 배경으로 온몸 가득 퍼져 나가던 아름다운 음악의 출렁임을 잊을 수 없다. 음악제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의 맛있는 음식, 빼어난 풍광 하나하나가 녹아들어 마침내 “예술이다!”는 감탄사가 되었다. 지금도 봄이 오면 습관처럼 바다 넘어 통영 쪽을 바라보게 된다. 봄은 통영음악제가 있는 통영의 그 봄 바다에서 온다는 오래된 기억 때문이다.

부산클래식음악제, 새봄 맞아 출항
개막 공연 통해 미래 가능성 입증
통영·부산국제음악제 ‘오버랩’ 인상

가덕신공항·동남권 메가시티 시대
부산과 통영음악제의 ‘윈윈’ 주문
함께 새로운 예술의 시대 열어야



17년 전 3월의 봄날, 통영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각난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던가. 윤이상과 우정을 나누며 예향 통영을 빛낸 시인 김춘수와 화가 전혁림은 인터뷰 기사만 남긴 채 이젠 별이 되었다. 작품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단편’으로 부산 작곡가로는 유일하게 통영음악제에서 조명받은 김철화도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당시 음악제 사무국장 이용민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재단의 대표를 맡아 여전히 음악제를 지키고 있다.

부산 사람들을 공연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통영음악제의 특징 중 하나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윤이상과 시인 유치환이 대처인 부산에 나와 직장을 잡았듯 부산과 통영은 한 뿌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다. 부산 음악인을 부산이 아니라 통영에서 처음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오충근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부산 연주단체로는 처음으로 통영음악제에 참여한 실내악 연주팀 ‘뮤즈 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 한국 현대음악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한국의 작곡가들’이라는 공연을 이끌었다.

올해 부산이 통영보다 ‘음악의 봄’을 선점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지난해 취소사태를 빚었던 통영음악제는 객석 한 칸씩 거리 두기를 실시하는 가운데 오는 26일부터 내달 4일까지 열흘간 ‘변화하는 현실(Changing Reality)’을 주제로 19개의 공연을 23회에 걸쳐 선보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음악축제’를 모토로 내건 부산클래식음악제가 원래 올 1월 제1회의 돛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3월로 일정을 옮기면서 ‘음악의 봄 바다’에 혼선이 생긴 셈이다.

통영음악제에서 만난 오충근 예술감독이 이끄는 부산클래식음악제(Busan Classic Music Festival·BCMF)가 지난 2일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에서 열린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음악의 바다’로의 항해에 나섰다. ‘공존, 시간을 열다’를 주제로 내건 제1회 부산음악제는 오는 17일까지 금정문화회관에서 모두 7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후배와 선배 세대의 공존과 조화를 통해 부산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개막 공연은 BCMF의 가능성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한 칸씩 거리 두기를 했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까지 객석을 마련할 정도로 매진 그 이상이었다. 청중은 차분한 가운데 열정이 느껴지는 수준 높은 관람문화를 보여 주었다. 고전음악과 예술성의 모차르트, 현대음악과 대중성의 피아졸라 작품으로 구색을 갖춘 데다 패기만만한 젊은 음악인을 전면에 내세워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부산음악제에서는 통영에서 느꼈던 봄 바다의 달콤함이 묻어났다. ‘세계적 수준의 명품 실내악 축제’를 내걸었지만 지금은 중단된 부산국제음악제의 설렘과 낯섦도 함께 교차했다. ‘부산 클래식 대모’로 불린 고 이명아 부산아트매니지먼트 대표가 기획한 부산국제음악제를 2005년 개막 때부터 줄곧 지켜본 터라 아쉬움이 많았다. 부산음악제에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부산국제음악제가 오버랩된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이바하 페스티벌, 부산국제음악제 등 부산 실내악 축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부산음악제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이 비상한 시절에 막을 올린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준 높은 음악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에겐 절로 위로와 치유가 되었다. 나아가 음악제가 열리는 금정문화회관은 철저한 방역으로 잡귀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던 고대 성지인 소도(蘇塗)를 연상시켰다.

새봄을 맞아 부산과 통영에서 ‘음악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를 앞둔 지금 더욱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게 통영과 부산의 음악제다. 통영음악제가 초기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열심히 벤치마킹했듯 갓 출항한 부산음악제도 통영음악제와 ‘윈윈’ 할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가덕신공항이 들어서고 동북아 중심도시에서 열리는 2030 부산 월드 엑스포에 세계인들이 몰려들 때, 10돌을 맞은 부산음악제도 세계에 내놓을 만큼 부산이 자랑할 문화상품으로 박람회 목록에 당당히 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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