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례조차 없는 부산 공공미술, 관리 방치 더는 안 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해 9월 태풍 마이삭으로 파손된 프랑스 작가 니콜라스 쉐퍼의 공공미술 작품 ‘LUX 10-Busan’이 철거될 예정이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2016년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환경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3억 원을 들여 제작했던 세계적인 작품이다. 태풍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인도 쪽으로 넘어져 중간축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 직후 수영구청은 부산비엔날레조직위, 부산시, 외부전문가 등과 자문회의를 열었으나, 관련 조례나 예산조차 없어 원형 보존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수영구청은 훼손된 작품을 민락동 옛 청구마트 부지로 옮기고, 쉐퍼 유족 측에게 철거 의견을 물어 둔 상태다. 유족이 동의하면 이 작품은 철거 순서를 밟게 된다. 설치된 지 불과 4년 만이다.

태풍 마이삭으로 쉐퍼 작품 철거 위기
통합 관리·활용 조례 등 시스템 필요

수영구청은 관련 조례 미비 등으로 작품 이송비 550만 원도 부산시 보조금을 충당해서 사용할 지경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선 지자체에는 공공미술 조례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2018년 해운대구청이 오펜하임의 ‘꽃의 내부’ 작품 무단 철거 이후 반성 차원에서 비석까지 세웠지만, 통합적인 관리 체계는 여전히 사각지대임을 드러내고 있다. 지자체가 예술 이벤트에만 급급할 뿐, 내실 있는 관리나 활용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녹슨 청동작품, 이끼가 낀 채 방치된 작품, 색 바랜 벽화 등 관리 안 된 공공미술 작품이 누가, 어떤 의도로 설치했는지도 모른 채 도시의 ‘흉물’로 전락할 우려마저 높다.

공공미술 작품 설치는 국제문화도시로 가는 첫걸음이다.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해 작품의 향후 관리·활용·철거에 대한 조례 등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작품 특성에 따라 ‘생애 주기’를 설정하고 ‘처분 정책’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영국의 주요 주와 카운티, 시에서는 작품 ‘수명 주기’를 5년, 10년, 30년 단위로 ‘지속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처음부터 미술품 제작 금액의 일정 비율을 떼서 유지 보존과 관리 행정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법령에 한 번 설치된 미술품에 대한 사후 관리 규정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공공미술 작품은 매년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설치 개수의 양적 확장보다는 내실 있는 관리 및 활용에 더 집중해야 한다. 작품 기획부터, 설계, 부지 선정 과정에 더욱 깊은 논쟁과 시민의 공감이 필요하다. 그 공감대 위에서 작품을 관리하고 가치를 발전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설치 초기 단계부터 주민 및 인근 학교, 기업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작품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사후 관리와 활용에 자발적 참여와 봉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삶과 문화를 잇는 공공미술의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발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공공미술의 통합 관리와 제도 혁신,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