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에 어둡게 드리운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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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 부산·울산·경남·제주지역 전문대학총장회 회장·동의과학대학교 총장

2021학년도 대입은 예견대로 최악의 상황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체 대학 입학정원에 비해 대학 지원자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일반(4년제)·전문대학을 막론하고 2월 마지막 주까지 신입생 모집에 총력을 다했으나, 대규모 미충원 사태는 막을 수 없었다. 특히, 학생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과 지역 경쟁력 약화가 맞물려 부울경 지역대학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몰려있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라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대학 운영을 위한 재정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든 만큼 모든 대학이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한다. 대학마다 학과 정원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이미 대학들은 경쟁력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고, 학생 선호도 및 산업구조 변화 등 대외적 상황을 고려해 학과를 신설하는 등 구조조정에 분주한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낮은 신입생 충원율과 열악한 재정으로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대학을 위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현행 사립학교법상 대학 청산 시 잔여 재산이 모두 국가와 지자체에 귀속되는 문제로 자진 폐교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대학이 일부 있다. 교육부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법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악화일로의 상황에 고등교육의 근간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국내 고등교육기관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간 두 교육기관은 고등교육의 중심축으로서 ‘학문 중심 교육 및 연구’와 ‘전문직업인 양성’이란 각자의 영역에서 고등교육 발전에 공헌해 왔다. 안타깝게도 두 교육기관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과 위상은 동등하지 않다. 전문대학의 역사는 1960년대 후반 산업 근대화에 필요한 중견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된 사립전문학교에서 출발한다. 1979년 전문학사를 수여하는 전문대학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반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차선으로 선택하는 대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도, 지난 50여 년간 산업 수요를 반영한 학과 신설 및 교육과정 개편 등 일반대학과 차별화된 직업 교육 혁신으로 전문대학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꿨다. 대학 명성보다 전공을 우선시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으며, 최근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전문대학으로 유턴 입학하는 학생 수가 증가하는 추세는 달라진 전문대학의 위상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전문대학의 약진에 반해, 일반대학은 학문중심 교육 및 연구라는 본연의 사명에 소홀했다. 전문대학에서 전담해 온 간호·방사선·임상병리과 등 보건계열 학과를 이미 오래전에 개설하였고, 급기야 몇 해 전부터는 2년 정도의 교육으로도 충분한 항공승무원, 반려동물관리, 호텔관광서비스, 헤어·피부미용, 드론 조종 분야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는 이 현상을 더욱 가속할 것이다. 이러한 일반대학의 전문대학 따라하기는 장기적으로 고등교육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낭비를 초래할까 우려된다. 취업률에 연연한 마구잡이식 학과 신설은 대학의 역량을 분산시켜 4년제 대학 본연의 학술·연구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또한, 학제를 무리하게 4년으로 연장하여 고질적인 학력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간 전문대학이 실용교육을 통해 일궈 놓은 학벌주의를 탈피한 능력중심사회로의 이행을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위기 앞에 장사 없다지만, 단기간의 성과를 쫓아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근간을 무너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본연의 교육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방향으로 대학은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문중심교육’과 ‘실무중심교육’이 균형적으로 발전하여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대학은 일반대학답게, 전문대학은 전문대학답게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대학이 나가야 할 바른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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