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40년 9개월 15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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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최근, 영화 ‘26년’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관람 시 느꼈던 분노와 고통 그리고 찝찝함이 좀처럼 재관람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했고 내 마음도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이유를 더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영화 보기를 시작했지만, 역시 ‘26년’은 단번에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1980년 5·18 광주의 피해자가 등장하고 그들의 고통이 이어지면, 누구라도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것이다. 화면을 멈추고 숨을 쉬고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복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현실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단서 조항을 달아서 말이다.

영화 ‘26년’ 마음 다잡고 재관람
5·18 피해자 등장 장면 고통스러워

오랜 시간 흘러도 세상은 여전
부당한 권력 대항하는 사람 많아

최근 미얀마 군부의 민중 탄압 심각
‘26년’ 속 민중처럼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 ‘26년’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각색 영화이다. 웹툰 ‘26년’은 2006년 4월 10일에 첫 화 ‘그 죽음을 기억하라’를 공개했다. 그리고 ‘단절되지 않는 아픔’(2화), ‘상처는 깊은 흉터를 남긴다’(3화), ‘일어서는 사람들’(4화)이 이어졌고, 그해 5월 16일 ‘26년을 이야기한다’로 어느덧 ‘그 시간’에 도달한다. 비록 연도는 달라졌지만, 그날 ‘5월 18일’. 한국 근대사의 잊힐 수 없는 비극이자, 지금도 끝나지 않은 상처의 그날. 상처의 시간으로 돌입한 5월 20일에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11화)을 내보내며, 피 묻은 26년 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26년’은 그날로부터 26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에서, ‘단절되지 않는 아픔’에 여전히 ‘그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끝내 ‘다시 일어나’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날의 상처의 ‘그 깊은 흉터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6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2012년 11월 29일 영화 ‘26년’이 개봉했다. 어떤 이유인지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는 시간과 자금과 노력이 유달리 많이 소요되었다. 당시로서는 낯선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까지 도입하며 영화 ‘26년’은 어렵게 그리고 간신히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영화의 결말처럼, 학살 주범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슬슬 결백을 주장하는 쪽으로 말을 바꾸었다. 죽은 자를 모욕하고 역사 속 자기 입장을 번복하려는 움직임도 내비쳤다. 그러한 주범을 변호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여전히 역사를 고쳐 쓸 수 있다고 믿는 지도자가 나타나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국정은 한없이 어지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1980년 5월의 참극을 다시 빚을 수도 있었던 섬뜩한 순간도 지나갔다.

또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했다. 독재와 군부와 탄압과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로 여전히 거리는 만원이었다. 몇 년 전 홍콩이 그러했고, 현재 러시아와 미얀마가 그러했다. 최근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조준 사격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집에서 시위대의 행렬 속에서 쓰러져갔다. 부당한 권력에 군중은 멈출 수 없을 것이고, 1980년 5월 그날처럼 ‘그쪽의 군부’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무려 40년 하고도 9개월 하고도 15일이 지났는데도 어쩌면 세상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총과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사악한 의지에 저항해야 하는 민중들은 여전히 쓰러져갔다. 40년은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며, 주변 상황은 이 싸움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늘 웅변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광주와 홍콩과 미얀마 다음에 무엇이, 어떻게, 어디로 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40년 하고도 9개월 하고도 15일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26년’ 속 민중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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