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내량 관통하는 KTX 노선에 600년 어업유산 사라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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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견내량 돌미역 채취어업. 어민들은 긴 장대를 이용해 미역을 건져 올리는 전통 방식을 지금도 고수한다. 부산일보DB

“이대로 철도가 놓이면 600년 전통의 국가중요어업유산과 함께 대대로 이어온 황금어장까지 사라질지 모릅니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서부경남 KTX) 건설로 인해 남해안 어민의 주 조업지 중 하나인 ‘견내량’ 어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 노선안이 확정되면 교량과 어장이 너무 가까워 해양 환경 변화로 심각한 어업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서부경남 KTX 노선안
‘왕의 미역’ 서식지에 교량 건설
작은 연륙교에도 어장 황폐화
노선 안 바꾸면 돌미역 못 볼 듯

4일 지역 어민들에 따르면 거제와 통영 사이에 자리 잡은 견내량은 경남에서도 손꼽히는 청정해역으로 다양한 수산 동·식물이 서식한다. 대표적인 게 돌미역이다. 높은 햇빛 투과량과 따뜻한 수온 환경에서 수심 10m 깊이 천연 암반에 뿌리를 두고 거센 조류를 버텨 낸 견내량 돌미역은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난다.

조선 시대 경상·전라·충청도 수군 본진을 통솔한 이순신 장군은 각 진영의 특산물 중 최고만을 골라 임금께 바쳤는데 그중 하나가 견내량 돌미역이었다. 후세 들어 ‘왕의 미역’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지금도 미역 채취가 시작되는 5월이면 견내량 일대는 작은 어선들로 북적인다. 수로 양쪽에 자리 잡은 통영 연기마을과 거제 광리마을은 거대한 ‘미역 덕장’으로 변한다. 3.5kg들이 1단 가격이 일반 미역보다 3배 이상 높은 20만 원 남짓으로 작은 어촌 마을에 짭짤한 소득원이 된다.

지역 어민들은 미역 종자 훼손을 막기 위해 대대로 이어 온 전통적인 채취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빠른 물살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튼튼하게 닻을 내린 후 장대(트릿대)로 미역을 둘둘 말아 건져 올린다. 해양수산부는 이런 독특한 조업 방식의 보전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지난해 국가중요어업유산 8호로 지정했다.

여기에 미역 군락을 보금자리 삼아 감성돔, 장어, 해삼, 놀래기 등 다양한 어족자원이 몰려 어군을 형성한다. 지역 어민들이 황금어장이라며 첫손에 꼽는 이유다.

그런데 2009년 미역이 자취를 감췄다. 견내량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해간도와 육지를 잇는 길이 270m, 폭 8m의 작은 다리가 높인 직후였다. 그해와 이듬해까지 미역 생산량은 ‘0’을 기록했다. 미역 숲이 사라지면서 다른 생물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심각성을 인지한 어민과 수산당국의 미역 자원 회복 노력이 계속됐고, 꼬박 3년 만에 견내량에 미역 숲이 되살아났다.

광리마을 어민 이선국 씨는 “발표된 계획대로라면 철도 교량이 견내량을 관통한다”면서 “작은 연륙교만으로 3년 넘게 어장이 황폐해졌는데, 더 큰 교각이 세워지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 신거제대교 교각이 선 주변 바다에도 미역 군락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견내량은 창원, 마산, 부산으로 가는 유일한 항로라 충돌사고 위험도 크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발생한 대형 사고만 8건”이라며 “환경과 안전을 위해서 교량 위치를 견내량과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해 본 계획 수립 때 반영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부적인 내용은 계속될 절차를 거쳐 구체화한다. 수렴되는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 환경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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