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방에 큰 공항이 필요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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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행정팀장

국가균형발전. 지역에 균등한 기회를 주고, 발전 역량을 키워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을 말한다. 국민 삶의 질이 최대한 지속 가능하고 평등하도록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이 용어는 존재만 할 뿐, 작동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현실은 수도권에 모든 것이 흡수되는 블랙홀 현상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특정 지역에 인구와 재화가 초고밀도로 집중되니 재난이나 전쟁 등 유사시 국가의 위험도가 팝콘처럼 폭발하기 직전이다. 한 번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가 끝도 없이 커져만 간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무색하다.

‘항공 마피아’ 뒷배 일부 정치권·언론
국가균형발전 무시 가덕신공항 폄훼·정쟁화
메가시티, 공공기관 이전 힘 싣고 속도내야
새 부산시장 ‘수도권 1극주의’ 타파 로드맵을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두고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의 위험성과 취약성이 그대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3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을 보면, 전체 확진자의 62.9%가 서울·경기도·인천 등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였고, 국가 경제 활동의 대부분이 일어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치명적인 감염병 뿐만 아니라 적의 생화학 무기 공격 등에 뒤따를 국가 위기 상황을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산지역본부 관계자들과 환담할 기회가 있었다. 2015년 진주 경남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한 LH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과거와 달리 진주 본사와 직급을 가리지 않고 인사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본사를 오가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만족했다.

부산의 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의 지난해 지역인재 채용 비율이 33.9%였다는 소식이 최근 들렸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과거에 비해 큰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호기롭게 추진하겠다던 추가 공공기관 이전은 답보 상태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핵심 정책이 여러 이슈에 묻혀 공중분해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관이 주도하는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인위적인 정책보다는 민간 기업 본사나 제조시설 등이 자발적으로 지역에 둥지를 틀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미국 텍사스 주의 주도인 오스틴은 얼마 전 미국 컴퓨터기술산업협회가 발표한 ‘최고의 기술도시’에 1위로 선정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애플, 구글 등의 연구시설이 즐비한 이 도시는 날이 갈수록 청년이 모여드는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전 기업에 좋은 여건과 혜택을 주니 일자리가 는다. 예전부터 ‘실리콘 힐스’로 불리는 오스틴시는 쾌적한 주거·문화·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한다. 독특한 도시 문화와 아름다운 환경도 자랑한다. 세계적인 문화 축제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성공 사례를 탄생시키기 힘들다. 경제성을 내세운 예비타당성 조사와 규제, 조세 정책 등으로 지역에 올 ‘돈줄’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예타 면제 사업에 대해서는 ‘지방 투자는 자원 낭비’라는 수도권 논리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수도권에 인구가 많다고 도로, 철도 등 주요 인프라와 신도시들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오히려 국가 차원의 인구 분산, 균형발전 정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탄생하자 일부 수도권과 대구·경북 언론은 국토교통부 등의 반대 논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국책 사업으로 가덕신공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쟁의 소재로 이어가려는 모양새다.

‘일개 지방 도시가 공항에 대해 뭘 안다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해 온 힘을 다한 부울경 공무원들은 국토부 등 항공 관료와 수도권 전문가 그룹의 이러한 ‘차가운 시선’에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국토부의 눈치를 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자문을 요청하는 부울경에 손사래를 치기 바빴고, 국토부와 공생 관계인 국방부와 공군 역시 가덕신공항 추진에 등을 돌렸다.

4·7 부산시장 보궐선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부산시장이 경남도지사, 울산시장과 함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더없이 강력한 ‘수도권 1극주의 타파 로드맵’을 시·도민 앞에 내놓고 실천하는 것이다. 수도권 1극에 대항할 유일한 대안인 부울경이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영영 회생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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