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누벨바그의 거장, 자크 리베트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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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누벨바그 감독들은 세계영화사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그의 이름은 언제나 가장 뒤늦게 언급된다. ‘자크 리베트’라는 이름은 사실 낯설고 생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누벨바그의 거장임이 틀림없다. 가장 지적인 감독이며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 그의 회고전이 2월 16일부터 3월 10일까지 영화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는 최초 상영이며, 18편이라는 숫자는 리베트의 영화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상영되는 편수라고 한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회고전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지적이고 실험적 영화 내놓은 감독
러닝타임 13시간 작품부터 최근작
10일까지 한국 최다 18편 회고전

픽션·다큐 혼합 즉흥적 연출 스타일
완성보다 ‘누구와 찍는가’ 과정 중시


리베트는 1950년대 단편영화를 찍었으며,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등과 교류하며 영화평을 썼다. 글을 잘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살아생전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은 리베트. 이는 그의 성향과도 관련 있어 보이는데 리베트는 영화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이었지만, 일상에서는 자신을 잘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리베트 관련 서적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리베트는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며 미지의 감독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은 그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연출 스타일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보통의 영화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러닝타임,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혼합, 시놉시스 몇 장만 배우들에게 나누어주고 거의 모든 대사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연출. 리베트는 영화란 완성보다 ‘누구와 함께 찍느냐’는 과정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 감독으로 영화를 찍는 중에도 배우들에게 질문하고 소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로 인해 리베트는 시나리오도 배우들과 함께 썼다고 생각해 공동으로 이름을 표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리베트의 연출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1971년에 제작된 영화 ‘아웃 원’이 있다. 영화는 12시간 40분의 기록적인 러닝타임으로 딱 한 번밖에 상영되지 못해서 리베트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연극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로 청년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리허설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게 만드는 영화다. 몇 시간씩 무대 위에서 연기연습만으로 채워지는 영화가 낯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리베트의 ‘영화리듬’이며 연극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픽션의 시간들을 견뎌냈을 때 현실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 찰나의 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리베트의 영화 세계가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2001년 작품 ‘알게 될 거야’는 좀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연극배우 카미유는 3년 전 이탈리아로 갔다가 연극공연을 위해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 파리로 온 그녀는 자연스럽게 옛날 연인 피에르를 떠올리고 그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카미유의 애인 우고도 도미니크라는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고, 피에르의 애인 소냐도 도미니크의 이복오빠를 만나면서 세 커플이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는 이야기이다.

리베트의 연출세계를 살필 수 있는 이 영화는 인물들의 욕망이 그려지고 있는 방식도 탁월하며, 현실과 근접해 있는 연극무대, 리베트의 연극과 문학을 아우르는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엔딩에 집중하길 바란다. 기존에 연극배우 카미유만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엔딩에서는 모두 다 함께 만날 수 없었던 7명의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가 그들만의 공연을 펼친다. 연극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영화는 끝날 수 있지만 실제(현실) 삶이 끝날 수 없음을 역설한다. 리베트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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