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공간 읽기] 양산 서들마을 ‘세모네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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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포개진 층의 만남, 창으로 이어지는 ‘마당 깊은 집’

세모네모집은 빛과 켜(포개진 하나하나의 층·Layer)의 만남이다. 빛과 켜가 만나, 때론 사색의 공간을 만들고, 때론 건물의 깊이감을 더한다.

켜엔 세월(시간)이 만들어 낸 켜, 공간이 만들어 낸 켜가 있다. 세모네모집은 시공간이 만들어 낸 결정체다.

빛과 켜를 간직한 세모네모집은 경남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다. 흔히 서들마을이라 칭하는 양산주택단지로 부산도시철도 2호선 증산역에서 걸어서 10분 내 거리에 있다. 이곳엔 아름다운 주택이 즐비하다. 도심에서는 쉬 찾아볼 수 없는 주택들. 먼저 눈이 즐겁다. 경기도 파주에 헤이리 예술마을이 있다면, 양산엔 서들마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도 눈에 띄는 한 집, 바로 세모네모집이다.


외형적 모습으로 집 이름 지어
시·공간이 만든 결정체 ‘감동’
‘막힌 듯 열린 구조’ 정감 더해
시선 거치는 공간,한옥 특징 가미
2020년 주거 부문 ‘베스트’상


■건축주를 만나다

대지 면적 305.9㎡에 연면적 208㎡ 규모의 2층 집이다. 외벽 색채가 1, 2층을 확연히 구분 짓는다. 1층 외벽과 담장은 현무암 재질의 벽돌로 그 질감을 최대한 살렸다. 2층은 하얗다.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당(중정)을 끼고 있는 ㄷ자 형 집이다. 밖에서는 마당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부산대 근처에 살다가 이곳에 집을 지을 생각으로 땅을 사 두었는데, 잡지에 아키텍케이 건축사사사무소 이기철 대표의 글을 보고 내가 그리는 집과 맞겠다 싶어 무조건 건축사 사무소로 찾아갔습니다.” 그때가 2016년 늦가을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작업 중인 게 있다며, 6개월 정도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고요. 설계 기간을 거쳐 2018년 봄에 공사를 시작해 2019년 6월 입주했으니, 집 짓는데 1년 3개월 정도 걸렸네요." 세모네모집 건축주(58·의사)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무엇보다 집 이름이 너무나 궁금했다. 왜 세모네모집일까? “한 건축 사진작가가 집을 보러 왔다가 건물의 외형적 모습이 세모, 네모인 것을 보고 명명한 게 건물 이름이 됐습니다.” 건축주의 설명이다.

건축주의 직업은 외과 의사지만, 기본적으로 건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았다. “건축주가 현장 소장보다 도면을 더 많이 봤을 정도였습니다. 도면에 나와 있는 수치도 정확하게 외우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또 읽어서 외울 정도의 독자. 어떤 작가가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대표의 심정이 그랬다. 이런 건축주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보다 소통에 큰 도움이 됐다.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이 대표 측에서도 건축주와 긴밀한 소통을 이어 나갔다. 그는 건축주와 소통 잘하는 건축사로 유명하다. 건축주와 2주에 한 번꼴로 만났다. 다양한 설문을 통해 건축주의 마음을 읽어냈다. 수술로 지친 건축주에게 조용하고 편안한 쉼 공간, 사색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건축주는 이 대표를 믿어 주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믿고 기다렸다. 때론 건축사의 작업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도면을 보고 또 봤다. 건축주는 "내가 정작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이 대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빠르게 알아내 건물에 반영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상적인 건축주에 대한 기준이랄까. 지금까지 만나본 건축주 중 건축가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었다"고 좋은 건축주를 만난 걸 행복해했다.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 대표는 이런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세모네모집 준공 이후 하자가 있어 건축주와 시공사 건축가가 모여 대책을 마련하고 정리하는 일이 있었다. 하자 원인 확인도, 시공사 대처도 시간이 걸렸다. 확실한 원인과 적절한 방법을 찾는 동안 건축주가 보여준 모습, 그리고 합리적인 비용의 지급까지…. 또 한 번의 감동이 밀려왔다.”



■빛을 만나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거실에 공을 많이 들였다. 가족의 공간이면서 건축주를 위한 사색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거실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부엌(1층), 안방(2층)과 마주 보고 있다.

건축주의 생각이 반영된 1, 2층을 틔운 거실은 빛을 만나 사색의 공간이 됐다. 거실 상층부 허창(그림자 창문)을 통해 들어 온 빛은 시간을 만나 그런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거실 깊이감은 커졌지만, 공간감은 좁아졌다는 점이다.

거실을 지나 원목 붙박이장이 가지런히 짜인 복도를 지나면 주방을 만난다. 이 집에서 주방은 더 이상 노동의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온 가족이 모여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공동 공간, 또 하나의 여유 공간이 됐다. 주방이 제2의 거실이 된 셈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선 환상적인 빛을 만난다. 위에서는 천창 아래 창살 같은 루버가 오묘한 빛을 빚어내고, 발아래에선 계단 조명이 어둠을 비집고 은은한 빛을 발현한다.

세모네모집에서 빛은 붓이 된다. 시공간을 만나 벽에 맘껏 그림을 그린다. 거실, 계단, 부부 욕실, 드레스 숍에서. 노출 콘크리트는 훌륭한 도화지다. 빛을 만난 공간은 한 뼘씩 한 뼘씩 더 풍요로워진다.



■켜를 만나다

안방에선 세모네모집의 또 하나의 특징 ‘켜’를 만난다. 외벽의 허창, 안방 창, 마당 창으로 켜켜이 이어지는 창. 마치 ‘엘리베이터 속 거울이 마주 보는 거울을 만나 그 사이에 있던 물체가 끝없이 반복되는 현상’을 보는 것 같은 창들의 이어짐이다. 허창이 여러 장 겹치면 켜가 된다. 켜는 다시 빛을 만난다. 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빛이다. 빛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켜다.

마당으로 가보자. 동쪽을 향해 나 있는 마당이 건물에 ㄷ자로 둘러싸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외부인의 출입은 제한하지만, 집 안의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공간이다. 오롯이 가족을 위한 공간. 우리 전통 마당에선 정원이 마당의 가장자리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가운데는 휑하니 비어 있다. 세모네모집의 정원은 이런 우리 전통 정원 양식에 가깝다. 여유와 멋이다. 이곳을 바위와 친구 된 수수꽃다리 한그루가 지킨다.

마당은 트임이다. 기본적으로 마당은 열린 공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접하기 쉬고 친근한 마당이라야 좋은 마당이라 할 수 있다. 사람과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하늘(우주)과의 소통에 마당만 한 게 없다.

세모네모집은 전체적으로 막힌 듯 열린 구조다. 이는 담장과 출입구, 불투명 창이 만들어내는 효과다. 집 입구(정문)와 뒷문, 건물 내벽은 모두 창으로 되어 있어 중정을 향해 맘껏 열려 있으나 외벽과 담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중정 앞 담장 높이도 어른 키보다 훨씬 높다. 중정을 향해 뚫린 듯 펼쳐진 창문과 담장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통상 내부 건물이 꽉 막혀 있을 땐, 담장 높이가 낮아진다. 하지만 내부 건물이 훤하게 펼쳐질 땐, 담장이 오히려 이를 막아준다. 그 역할이 이렇게 조화롭다. 외부와 직접 맞대는 버거움은 피하면서 외부를 배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셈법이다. 담장은 집 바깥으로부터 시선과 접근을 차단한다. 하지만 건물과 담장 사이엔 적절한 틈을 만들어 담장이 주는 답답함에 숨통을 틔웠다. 건물 외벽 허창은 외부의 시선을 막아주는 거름종이 역할이다. 이를 통해 외부 세상을 바라보는 이 집의 생각이 읽힌다.

2층 세모네모집을 1층 공간에다 펼치면, 예전의 우리 한옥 같은 모습이 그려진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선이 몇 겹의 공간을 거치게 되어있다. 세모네모집도 담과 겹겹이 이어지는 허창, 저 바깥의 또 다른 문이나 창문이 집의 깊이감을 더한다. 세모네모집은 지난해 국제적인 건축상인 아키텍처 마스터 프라이즈 주거 부문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수상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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