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타고 내려온 봄…통영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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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 농도가 ‘1’을 기록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날씨였다. 전망이 좋은 곳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시원해지고, 덤으로 깔끔한 사진까지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풍경이 이색적인 경남 통영의 다도해를 보러 달려갔다. 미륵산 미래사에서 출발해 미륵산 전망대를 거쳐 통영 케이블카를 타고 왕복하는 여행 코스이다.


바람소리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미륵산 미래사
편백나무 숲길 ‘미륵불 오솔길’ 피톤치드 샤워
미륵산 전망대선 통영항·다도해·지리산 조망
통영 케이블카 2km 구간서 본 풍경은 이미 봄


■미래사~미륵산 전망대

미륵불은 석가모니 열반 이후 세상에 등장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다. 우리나라에는 미륵불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은 이름의 산들이 많다. 전북 익산의 미륵산과 경북 울릉도의 미륵산이 그렇다. 통영 봉평동 미륵산도 마찬가지다.

미륵산에는 절이 하나 있다. 1954년 만들어진 미래사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국 승려들이 부산 범어사에 모였다. 효봉 스님은 일부 승려를 데리고 바다로 나섰다. 전남 해남으로 갈 생각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일제강점기 최초의 조선인 판사였다. 독립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죄책감에 시달리다 판사직을 내려놓은 뒤 전국을 떠돌다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효봉 스님과 승려들을 태운 배는 통영에 잠시 머물렀다. 효봉 스님은 미륵산을 보고 절을 창건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륵산 기슭에 자리잡은 용화사 도솔암에 정착했다. 전쟁이 끝난 뒤 효봉 스님을 따라간 제자 구산 스님이 미래사를 창건했다.

산양읍 산양일주로를 따라 돌다 영운리 이운새마을회관을 지난 뒤 미래사 입구 간판을 보고 미륵산길로 접어든다. 여기서 미래사까지는 약 2km 거리다. 길이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급해서 운전하기가 편하지는 않다.

미래사는 화려하거나 요란스러운 사찰이 아니다. 분위기는 고즈넉하고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푸른 하늘이 담긴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자 바로 미래사가 나온다. 사찰 마당 중앙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마당 한쪽에는 키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오른쪽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 우물이 보인다. ‘부처님의 젖’을 의미하는 ‘불유정’이다. 물맛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주차장에는 뜻밖에 자동차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미래사 주변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길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미륵산 전망대로 향하기 전에 먼저 미륵불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 절 앞 주차장 옆에 편백나무 숲으로 이뤄진 샛길이 보인다. ‘미륵불 오솔길’이다. 하늘을 뚫고 나갈 듯이 쭉 뻗은 편백나무 숲에서는 피톤치드 향이 강하게 뿜어져 나온다. 마스크를 벗고 맑은 공기에 섞여 퍼지는 향을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정신이 깨끗해지고 온몸이 상큼해진다.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오솔길 끝에 바다가 보인다. 한 손은 들어 올리고 한 손은 내린 미륵불이 바다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섰다. 미륵불 옆 공터에 고양이 여러 마리가 오간다. 함석으로 만든 통 여러 개가 놓여 있다. ‘길고양이 급식소’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미래사에서 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곳일까.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근심없는 표정으로 따스한 햇살을 쬐며 졸고 있다.

편백나무 오솔길을 되돌아온다. 미래사 입구 오른편에 작은 등산로가 보인다. 해발 461m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곳도 편백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이다. 산 정상까지는 1.2㎞ 거리다. 느긋하게 걸어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아 적당히 땀을 흘리면서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미륵산에는 통영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격파했던 한산대첩과 당포해전이 일어났던 해상구간 등을 망원경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한산대첩 전망대, 정지용 시비가 설치된 신선대 전망대, 통영상륙작전 전망대, 봉수대 쉼터, 통영항 전망대와 한려수도 전망대다.

비슷한 위치이면서도 각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매우 다르다. 한쪽으로는 통영 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옆으로는 섬이 점점이 뿌려진 다도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려수도 전망대에서는 남해 먼 바다쪽을 바라볼 수 있다. 미세먼지가 적고 날씨가 좋아 남해 미조는 물론 전남 여수 돌산도까지 보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는 지리산 천왕봉은 물론 일본 대마도와 진해까지 보인다.



■한려수도 조망 해상케이블카

미륵산 전망대에서 신선대 전망대를 지나 통영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으로 내려간다. 이곳도 나무가 그늘을 가리는 숲길이다. 케이블카가 끊임없이 상부정류장과 하부정류장을 왕복 운행하고 있다.

통영 케이블카는 길이 1975m로 거의 2km에 가까울 만큼 길다. 원래는 8인승이지만, 지금은 곤돌라에 같이 온 일행끼리만 탑승할 수 있다. 이렇게 나눠 타면 코로나19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고, 일행끼리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곤돌라 아래로 루지 트랙이 보인다. 지금은 문을 닫았는지 이용객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철탑을 지날 무렵 멀리 통영 앞바다가 보인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곤돌라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조망하는 바다는 조금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곤돌라 47대는 끊임없이 상부정류장과 하부정류장을 오간다. 비어 있는 곤돌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갇혀 있느라 정말 답답했던 모양이다.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통통거리며 달리고 있다. 바다 풍경에 매료돼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곤돌라는 하부정류장에 도착한다.

평일 낮인데도 케이블카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다. 복잡하거나 붐비지는 않지만 케이블카 매표소에도 꾸준히 손님이 몰려든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갇혔던 많은 사람이 여기로 다 몰린 듯 하다.

다시 상부정류장으로 올라가는 곤돌라 안으로 따스한 햇빛이 고개를 내밀면서 봄 소식을 전해준다. 갑자기 피로와 함께 졸음이 밀려온다. 창밖 바다를 내다보니 정말 봄 기운이 완연하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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