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꽃놀이 ‘생활 속 꽃’…이제는 집꽃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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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항제도, 매화축제도, 산수유꽃축제도 취소됐다. 2년째다. 결혼식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도 축소돼 덩달아 꽃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꽃은 지금 이 순간도 부지런히 핀다. 일상 속에 꽃이 있다면 기다릴 것 없이 매일매일이 꽃철이다.

◆1년에 꽃 얼마나 사세요?

1만 1616원.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꽃 소비액(2019년)이다. 화훼산업이 정점을 찍은 2005년(2만 870원)에 비하면 반토막이 났다. 2010년(1만 6098원)보다도 40% 가까이 줄었는데, 사치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경기를 탄다고 하기에는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이 25% 이상 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낮다. 스위스가 18만 원, 덴마크가 15만 원 정도로 1·2위를 기록하고, 일본도 7만 원을 넘는다.

문제는 경조사에 치우친 소비 유형이다. 업계는 자신을 위해 꽃을 사는 ‘생활 꽃’ 소비는 5%, 많이 잡아도 10%를 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행사와 집합을 막은 코로나19의 효과는 파괴적이었다. 농협 부산화훼공판장 양금동 경매부장은 “코로나 이전 2월 졸업 시즌에는 하루 경매 금액이 5억 원에 달했는데, 지난해 2월에는 2000만~3000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기억했다.

코로나19 이후 ‘집콕족’으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온라인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화훼산업이나 꽃 관련 온라인 정보량은 지난해 전년보다 10.5% 늘었다. 그러나 검색량이 71%나 상승한 몬스테라 같은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 관엽식물을 제외하면 절화(자른 꽃)에 대한 언급은 공공기관 캠페인 등 일회성에 그쳤을 뿐 실제 구매로는 연결되지 못했다.

그동안 정부는 어금버금한 꽃 생활화 정책을 반복했다. 그 중 2013년 버전 브리핑을 보면 원인 진단이 나와있다. 소비자보다 공급자 중심으로 홍보가 이루어졌고, 꽃 수명이 짧은 데다 개인이 관리하기 어렵고, 주요 유통 채널(꽃집)과 생산자단체 모두 영세해 똘똘 뭉치기 힘든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인당 꽃 소비액은 목표로 설정한 3만원은커녕 더 떨어졌고, 당시 지목된 원인은 대부분 지금도 여전하다.



◆행복꽃차의 도전

화훼 중도매인이자 장례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던 휴제단장식 이재성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로 시장이 초토화되자 꽃을 트럭에 싣고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줘봤는데 ‘내일 모레면 쓰레기가 될 텐데 공짜로 줘도 안 받는다’는 식이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오래 가는 신선한 꽃을 골라서 난전에서 가격을 붙여두고 팔았다. 차츰 입소문이 나자 멀리서도 찾아와 줄을 섰다.

그러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졌다. 노상 판매를 접으려는 그에게 주민들이 먼저 비대면 판매를 제안했다. 상자에 넣어서 지정된 곳에 두면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해 7월 ‘행복꽃차’가 시작됐다. 지금은 부산 90곳 아파트를 2주 단위로 찾아간다. 제철 꽃 서너 품종으로 구성하는 기본 만 원 구성 꽃 상자는 온라인 선주문을 받아 주당 평균 2500상자를 제작한다. 곧 양산 지역 아파트 판매도 시작한다.

행복꽃차는 수익 사업보다 생활 꽃 문화를 소개하고 새로운 소비자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지난 주말 상품은 거리두기 단계 완화로 꽃값이 요동치는 바람에 상자당 3000원씩 적자를 봤다. 전국 꽃집 납품 물량을 더해 경남 김해 영남화훼공판장에서 일등, 전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중도매인이고, 거점 배송 비대면 판매로 포장과 배송 비용을 줄여서 그나마 가격대를 지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뭔가 비싸고 사치 같았는데, 생전 처음 절 위해 꽃을 사봤어요. 사장님 유튜브 보고 열탕하고 손질하는 거 열공했고요. 다른 분들 사진 보니 잎을 더 떼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저희 집은 화병 하나 놓을 데도 없어 짐 정리도 사부작사부작 좀 해야겠어요. 꽃 하나 들어오고 느낀 점이 참 많네요. 앞으로 늘 구매할 것 같아요.” 행복꽃차 네이버스마트스토어에는 이런 ‘생활 꽃’ 입문자들의 후기가 속속 쌓이고 있다.



◆꽃 생활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이 대표는 경조사 중심의 시장 구조가 생산-유통-소비 전 단계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정일이나 일회성 행사에 맞춘 꽃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중요하지 않아서 소비자는 길게 볼 수 있는 꽃을 찾기가 힘듭니다. 꽃집도 재고 부담을 감안해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고, 5%의 ‘전문가급’ 소비자를 겨냥해 고급화되는 경향입니다. 95%의 ‘초보’ 소비자들은 몰라서 못 즐기고, 못 즐기니 모르게 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소비자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조사 대상의 3분의 1(32.4%)은 5년 내 절화를 사 본 적이 없고, 구매 경험자의 3분의 2(67.7%)는 선물·행사용이나 학교·사무실용이었다. 구매자가 느낀 불만 사항은 꽃이 금방 시듦(35.0%), 비싼 가격(27.2%), 관리의 어려움(19.0%), 꽃·잎의 신선도(8.9%) 순으로 나타났다. 오래 가는 신선한 생활용 꽃을 부담 없이 사보는 경험이 우선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농협 부산화훼공판장이 부산·울산·경남 하나로마트 27개점에서 운영하는 화훼농가 돕기 ‘1만 원 행복 상품’도 ‘장보러 왔다가 꽃도 사는’ 경험을 위해서다. 지난 주말 남창원점에서 하루 200만 원 매출을 거둘 만큼 호응도 있다. 양금동 경매부장은 “농협은행 지점을 대상으로 매달 한 달 동안 꽃을 볼 수 있는 미니 호접란을 배송해주는 구독 형식의 ‘원테이블 원플라워’ 운동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온라인쇼핑몰 마켓컬리도 생산자와 손잡고 지난해 1년 동안 ‘농부의 꽃’ 상품 100만 송이를 팔았고, 최근에는 강원도와 상생 협약을 맺고 튤립을 판매해 준비 물량을 조기 ‘완판’했다. 온라인에서는 생산자가 직배송하는 상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산화훼공판장의 생화도매업체 (주) 윌슨인터내셔널의 안영구 대표는 “화훼업계도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추고 일본처럼 절화 절단일자를 표기하는 등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정부 정책도 일회성 캠페인보다는 이를 지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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