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운무(雲霧) 속에 던져지다 / 이상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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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다는 게 산으로 갔다

사흘을 벼르고 고른 끝에 골라잡았지만

끝장을 보는 데는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도 더 걸렸다

새벽부터 운무는

종말을 불러다 구색을 갖추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운무 속에 나를 던질 때가 되었다

나는 미끼 없는 곧은 낚시 즐겼으니

간 큰 놈은 오너라 와서 날 물고 가라

산과 산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

초록은 동색이라고

우울과 권태가 보약 같은 밑밥이 될 줄이야

먼 창공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내 영혼 푸르게 푸르게 산과 바다에 업힌다



-이상개 시집 중에서-
모든 시인의 문학적 출발은 상처의 재현에서 시작된다. 시 작업과 문학 활동에 평생을 바친 노시인의 최근작을 읽으면서 모든 문학의 결론은 화해와 소통임을 또 깨닫는다. 시인의 길을 걸으면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고통 받았던 일들이 수없이 많았겠지만 반복되는 상처의 재현 속에 세월은 흐르고, 14권의 시집만으로도 풍요로운 시인의 영혼은 이제 가는 길이 산이든 바다이든 개의치 않는다. 시인의 방식으로 살아온 안개속의 삶이, 타자뿐만 아니라 자연마저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무르익었음을 깨달으며 이 시집 서문에 밝힌 시인의 일갈이 경외롭다. ‘살만큼 살면 되겠지만/ 얼마나/ 사람답게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규열 시인
1993년 등단

이규열 시인 약력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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