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이거나 견디거나’… 절망에서 걸어 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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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임성용(사진·46)은 첫 소설집 <기록자들>(걷는사람)을 냈다. 7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후 3년여 만의 출간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은 ‘지하’ 생활이다. ‘지하’는 주변 소외 도피 절망을 뜻한다. 작품들은 그 지하 상황에 위악적으로 맞서거나, 지하에서 걸어 나오는 전망을 꺼내들고 있다.

소설집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아버지 부재와 사망, 또는 애인과 헤어졌거나 아내/가족을 잃은 모종의 상실·곤궁 상황에 처해 있다. 그것이 ‘지하’ 상황이다.

임성용 첫 소설집 ‘기록자들’
지하 상황 소재 단편 7편 묶어

우선 ‘지하’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폭력이 나오는데 그것은 대단히 거칠고 위악적이다. 단편 ‘그게 무엇이든’에서 살인청부업자 근수는 변두리 촌락의 어린 시절에 모든 걸 다 배웠다. 아버지의 죽음 뒤 어머니를 범하려던 동네 난봉꾼 둘을 제거했던 거다. ‘목숨에 의미는 없다’(35쪽)는 저 막다른 단언은 무섭다. 단편 ‘기록자들’의 세계도 폭력적이다. 실족사한 아버지의 비밀 노트에는 살인청부업 기록 따위가 빼곡히 적혀 있다. 노트의 핵심은 해악의 인간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노트를 접한 아들도 결국 아버지의 길을 뒤따른다. 아버지의 부재와 삶의 공허를 더 큰 공허와 폭력으로 메우는 거다. 이런 폭력은 ‘인간은 먹고 싸고 차지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실패한 생물’이라는 근원적 회의에 몸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데 그쳐선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임성용은 ‘지하’를 극복하는 전망을 내비친다. 단편 ‘지하 생활자’는 ‘조난당한 신세’가 다른 이를 구한다는 설정이고, 단편 ‘아내가 죽었다’는 ‘삶은 견디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한다. 단편 ‘원주민 초록’의 주제 의식은 선명하다. 도시의 낙오자 청년이 채소를 훔쳐 먹다가 어느 날 마주친 텃밭 주인이 뜻밖에도 “서둘지 말고 쪼매씩 따다 무라”며 베푸는 선의에 큰 충격을 받는다. ‘무언가 나를 보호하고 있구나’라는 깨침을 얻고 부끄러움과 흥분을 느끼며 낙오의 삶에서 걸어 나온다는 것이다. 소설가 한창훈이 “임성용이 머잖아 어떤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소설은 문장이 깊어야 한다’고 하니까 핍진한 문장의 글쓰기를 기대한다는 것일 게다. 최학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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