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역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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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의 한국어 구사력은 말 그대로 천의무봉의 경지다. 소설 <임꺽정>(1928~1940년)에 나오는 능수능란한 사투리의 대향연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광대무변한 표현력, 온갖 현란한 비유와 수사까지, 우리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그에게 ‘대문호’라는 칭호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가 <임꺽정>을 쓰게 된 연유 중의 하나는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올곧게 지켜 내고자 하는 의지였다.

홍명희의 부친은 충북 금산에서 군수를 지낸 홍범식이다. 한일병합 소식을 듣고 스스로 소나무에 목을 맸다.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서에 따라 홍명희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3년 해외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에서 활동했고, 1919년에는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3·1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그런데 홍범식의 부친, 곧 홍명희의 할아버지 홍승목은 알아주는 친일파였다.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로 국권을 팔아넘기는 일에 일찍부터 협력한 인물이다. 아들이 목매고 죽는 걸 보고도 그의 행로는 바뀌지 않아 한일병합 이후에도 호의호식했다고 한다. 홍 씨 3대의 엇갈린 선택에서 역사의 씁쓸한 아이러니를 본다.

홍성원의 장편소설 <그러나>(1996년)에는 역사의 저편에 숨겨진 진실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기업체 회장으로부터 조부의 일대기 집필을 부탁받은 주인공이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그의 일기를 통해 말년의 친일행적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반면, 거액의 독립자금을 헌납했던 사람은 지금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한때 열렬한 독립지사였던 인물이 훗날 친일파로 변절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비극적인 소설의 소재감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삶이란 기실 선과 악, 긍정과 부정, 내면의 갈등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혼돈의 현장인 까닭이다. 항일이냐 친일이냐의 단순한 이분법은 무수한 진실을 희생시킨다. 거기서 숨은 동기와 극적인 사연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역사의 반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틈새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결국 밑바닥 자료들을 찾아내고 수집해 연구하는 부단한 노력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된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처럼 왜곡과 폄훼의 공격은 여전히 심각하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내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지만 멈출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거기 올바른 미래를 향한 역사 이해와 인간으로서의 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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