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남·동해안권 연대체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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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지역사회부장

국토 3분의 2가 시나브로 비어간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소멸의 길에 처박혀 있다. 유입 인구는 줄고, 젊은이는 서울로 몰려든다. 기업은 떠나고, 대학은 폐교 번호표를 받아든 신세다.

기득권과 수도권 세력의 연대는 공고하다. 가덕신공항이 증거다. 우리 지역에서 그나마 내세울 항만 물류 경쟁력이라도, 명실상부 하는 국제공항과 연결해 지역을 살려보려는 숙원은 십수 년째 선거용 불쏘시개였다. 이제 겨우 꿈이 이뤄지려나 하는데 수도권 세력은 여전히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고추 말리는 공항 필요 없다’고 쌍심지다. 수도권 집중이 그곳 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도시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해도 다수 국민이 몰리는(이용자가 많은) 곳에 온갖 인프라와 편의 서비스를 집중해야 한다며 비수도권 죽이기에 총공세다. 심지어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서울 인구 10만 명당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232.35명으로 부산(71.08)의 3배를 넘었다는 지난달 20일 <부산일보> 보도처럼 ‘서울공화국’이 재앙을 초래한다는 증거 앞에서도….

비수도권, 소멸 불가피한 체제
가덕신공항은 마지막 ‘발버둥’

특별법 통과 후 지역협력 절실
영남+광주·전남 연대체 구상
조정자 역할 부산 리더십 중요
4월 보선, 적합한 시장 나와야


이런 논리 앞에 남아날 비수도권은 없다. 인프라가 부족해 사람과 기업이 모이지 않고, 수요가 부족해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 투자가 되지 않는 악순환 고리에 갇히기 십상이다.

이번 달 가덕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는 국토 균형 발전의 분수령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충청권까지 수도권이 확장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덕신공항은 수도권에 포획되지 않을 균형 발전의 초석을 놓는 첫 시도다. 어떤 정치 세력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역 유권자들은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특별법 통과 후가 더 중요하다. 부산시는 경남·울산 포용에서 더 나아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까지 남해안권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부산에서 경북 북단 울진까지는 약 210km, 광주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다. 광주·전남도 인천보다는 가덕신공항 권역이고, 남해안 전체를 아우를 때 꼭짓점인 부산의 가치도 상승한다. 가덕신공항과 남·동해안 철도망을 매개로 각 지역의 강점을 살려 시민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남·동해안권 연대체’로 가꿔가야 한다. 여권에서 제기하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정치·행정적 의미의 시도라면, 남·동해안권 연대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지역 시민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생활 네트워크다.

대구·경북까지 포함한 영남권 5개 시·도가 지난달 17일 ‘그랜드 메가시티’ 공동연구에 들어간 것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오는 8월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기대하는 한편, 광주·전남까지 포함해 남해안권 전체를 아우르는 연대체를 꿈꿔보자. 남해나 완도에 촌집을 두고 포항이나 창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주5일 근무는 부산이나 광양에서, 주말은 보성이나 경주에서 보내는 것이다. 앞으로 노동시간은 더 짧아지고, 삶을 향유할 시간은 더 길어진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던 과거를 벗어나, ‘서울보다 먼 광주’를 넘어 남·동해안권 지역 내에서의 교통망 확충이 절실하다. 진행 중인 동해선·경전선 복선전철 사업이 더 속도를 내도록 지역끼리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굳이 하이퍼루프가 아니어도 전통적인 공간 개념을 뛰어넘는 삶의 영역 확장이 가능해지는 시대, 숨 막히는 고밀도 수도권에 대항하는 ‘삶의 질 높은 남·동해안권’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연대와 통합은 양보와 타협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중심’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산이 보여야 할 리더십의 핵심도 조정자다. 무조건 중심을 차지하려는 낡은 사고로는 이해관계가 다양한 이웃을 모으기 어렵다. 이웃에겐 부산이 기득권 세력으로 보일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영남권 인구만 1321만 명, 남해안권인 광주·전남까지 더하면 남·동해안권 전체 인구는 1661만 명에 이른다. 인구가 경쟁력인 시대, 흩어져 소멸 시계만 쳐다보며 ‘노인과 바다’로 스러져갈지, 더 넓고 새로운 생활권을 구축해 후손들에게 물려줄지, 우리 선택에 달렸다.

연대와 통합에서 필요한 또 하나의 자세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대구·경북이 한때, 아니 지금도 가덕신공항에 반대한다 해서 배척하는 것은 옹졸하다. 반대 이유와 그 지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해결점을 함께 찾으면 될 일이다. 광주·전남에 대한 낡은 지역주의도 탈피해야 한다.

수도권에서, 지역 내에서 온갖 분열주의는 가덕신공항 활주로를 닦을 때까지도 틈만 나면 고개를 들 것이다. 멀리 보고 작은 이익 앞에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지역의 성쇠가 달렸다. 이런 일에 적합한 부산시장은 과연 누구일까, 이번 보궐선거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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