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조선, 수주는 ‘봄바람’ 현장은 ‘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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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대형 조선소에서 받아오는 일감이 바닥나면서 수개월째 개점 휴업 상태다. 부산일보 DB

연말 몰아치기 수주로 3년 연속 신규 수주 세계 1위를 수성하며 모처럼 신바람을 내던 한국 조선업계가 연초부터 감원 칼바람에 움츠러들고 있다. 릴레이 수주로 일감은 확보했지만, 길었던 수주 공백 탓에 올 상반기까지는 현장 ‘일감 보릿고개’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대형사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노사 갈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달 31일 전 직원 업무연락을 통해 희망퇴직을 발표하고 지난 8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신청 마감은 오는 25일까지다.


대우조선 25일까지 희망퇴직
삼성중공업 정규직 대폭 감축
공적자금 수혈 때 감축 약속
하청업체 ‘아랫목’ 아직 살얼음

2015년 최악의 경영위기에 직면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채권단으로부터 4조 2000억 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조건으로 이듬해 채권단에 낸 자구계획에서 직영 직원 1만 3290명 중 5500명(인건비 45%) 감축을 약속했다. 경영진은 곧장 구조조정에 나섰고 지난해까지 무려 4277명이 직장을 떠났다. 하지만 약속 이행을 위해선 아직 1100여 명 이상을 더 추려내야 한다.

사측은 이번 희망퇴직이 자구안 이행을 위한 조처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인원에 비해 일감 확보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최근 몇 년간 수주 목표를 달성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수주 부진에 따른 경영 환경 악화에 대응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이후 연간 수주 실적이 매번 목표치를 밑돌고 있다. 지난해 54억 1000만 달러를 수주해 목표의 75%를 채우는 데 그쳤고, 2019년과 2018년도 목표치의 70~80%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노조는 “희망퇴직은 자본이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정리해고 수단이자 대규모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수주 가뭄에 허덕여 온 삼성중공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6년부터 채권단 자구안에 따라 상시 희망퇴직을 받아 온 삼성중공업은 1만 3177명이던 직영 직원을 1만 35명까지 줄였다. 회사는 올해 이후로도 희망퇴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이들 조선사는 2000년대 조선업 호황기 때 노동력 수요가 큰 해양플랜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해 대규모 수주와 고용이 선순환을 이뤘었다.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중단됐고, 신규 선박 발주도 과거 호황기만큼은 따라가지 못해 인력 규모에 맞는 일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세밑 연이은 수주로 분위기는 끌어올렸지만, 설계, 자재 확보 등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현장에 일감이 풀리려면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중소 협력사는 속이 타들어 간다. 협력사 관계자는 “원청도 일이 없어 구조조정을 하는 마당에 우리한테 돌아올 몫이 있겠나. 연이은 수주로 이미 봄이 온듯 말하지만, 현실은 살얼음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거제 양대 조선소 협력사 노동자는 3만 1150여 명이다. 불과 1년 새 8100여 명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이대로는 기술·생산경쟁력 저하는 물론, 정작 일감이 들어왔을 때 일할 사람이 부족하게 된다. 앞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행했던 거제지역 조선업계는 2018년을 기점으로 수주가 늘자 숙련공 부족 역풍을 맞은 바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거제시는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을 가동하고 있다. 국비 등 877억 원을 투입해 6000여 명의 숙련인력을 지킨다는 복안이다.

다행히 업황 전망은 어둡지 않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는 올해 신조선 발주량이 전년 대비 24%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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