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미리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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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가

노포장터 주변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다. 여느 때라면 화훼하우스단지 앞이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지만 거기도 빈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주택가 골목에 세웠다. 장터 초입부터 길 양쪽에 좌판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다. 길목은 사람들과 수레에 치어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여느 장날 때처럼 고물 좌판이 펼쳐진 곳에 앉았다. 호롱, 못난이 삼형제, 놋 주전자, 엿장수 가위 같은 옛날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노포장터 북적북적 쏠쏠한 재미
밀면·칼국수집 줄 서도 맛은 일품
수다 떨며 마시는 시원한 수제맥주
야구경기 응원 모습 한마디로 장관

일상을 즐길 수 없는 ‘코로나 일상’
아, 모든 것이 그립고 그리워라


인파를 뚫고 장마당에 도착했지만 거기는 길목보다 더 북적였다. 내 단골 쌀가게는 오늘도 손님들이 많았다. 쌀가게 아주머니는 이번에도 쌀을 됫박에 고봉으로 수북하게 담고도 손 삽으로 몇 번 더 퍼 넣어주셨다. 장터 쌀집은 쌀을 저울에 올려놓고 조금씩 덜어냈다가 말았다가 하는 동네 쌀가게와는 달랐다. 현미 다섯 되와 파 한 단, 꽈리고추 한 봉지를 사고 얼른 장터를 빠져나왔다. 배가 고팠지만 국수집에도 국밥집에도 사람이 많아 앉을 곳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 가서 비빔 밀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차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맵싸한 밀면과 얼큰한 육수를 떠올리니 배가 더 고팠다.

밀면 집 앞에 대기자들이 번호표를 들고 줄을 서 있었다. 이 밀면집이 맛있는 집 명소로 알려지면서 사계절 내내 손님이 들끓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설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때에도 줄을 설까 싶었다. 나는 기다리기 싫어 그냥 골목시장 칼국수 집으로 갔다. 쫄깃한 면발에 구수한 멸치육수 맛이 일품인 칼국수를 땀을 빨빨 흘리면서 먹었다. 마지막 남은 국물을 마시는데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약속 장소를 수제맥주 집으로 정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와 만나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와서인지 약속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수제맥주 집은 초저녁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우리는 우선 스타우트 포터 두 잔과 피자 한 판을 시켰다. 음악 소리와 손님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친구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 뒤쪽에는 단체로 왔는지 스무 명 남짓한 청년들이 커다란 테이블 두 개를 붙여놓고 떠들었다. 친구는 얼마 전에 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 온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너무 시끄러워 친구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실내는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점점 더 소란스러웠다. 맥주란 마주앉은 이와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어우러져야 제 맛이 감돌잖은가. 게다가 마리오 란자의 저 유명한 노래 ‘Drinking Song’까지 흘러나와 맥주 맛을 더욱 돋우었다. 짠! 우리는 두 번째 시킨 바이젠 잔을 들고 또 건배를 했다. 건배 속에 우리의 바람이 들어 있었다. 언제든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잔을 부딪치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맥주를 입에 대자 구수한 밀 향기가 입안에 확 퍼졌다.

집에 와서 티브이를 켜고 얼른 스포츠방송 채널을 눌렀다. 마침 프로야구 하일라이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오늘 L팀의 선발로 스트레일리 선수가 나왔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S팀의 중심 타선 모두를 삼진으로 쓸어 담는 그의 시원한 투구 폼은 볼수록 빨려들었다. 오늘 야구 경기는 스트레일리 삼진 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만 관중이 넘는 사람들이 응원가를 부르고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스마트폰 불빛 응원이 화면에 나왔다. 과연 장관이었다.

나는 식탁 위에 올려놓은 장바구니를 풀어 쌀통에 현미를 부었다. 쌀통이 차니 뿌듯했다. 오늘 종일 난장을 누빈 기분이다. 이상하게 난장판을 누벼도 난장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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