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단풍 기차 / 송재학
내가 마셔야 할 독의 양만큼
단풍 화물을 실은 기차가 오긴 했다
내 눈동자 안쪽 미로의 갱도에서 서행하는 기차는
증기열차
여정을 단축하는 기차가 있다면
피를 토하는 기관사도 있다
커브에서 덜컹거리는 게 너무 깜깜하여
붉은색과 노란색이 서로 치명적인 줄 알겠다
멀어져가는 선로가 흑백으로 바뀔 때쯤
간이역이 마중 나왔다
잡목림이 말끔하게 하역한
붉은색과 노란색 음역(音域)은
간이역 확성기의 힘을 빌려
번질 대로 번졌다
단풍 화물차에게
붉은색과 노란색 땔감은 더 필요하겠지
-송재학 시집 중에서-
단풍을 찾아 가보았다. 멀리 떠나지 못하는 소심함으로 가까운 장안사쯤으로 가서 단풍 화물차를 만난다. 내 눈동자 안쪽 미로의 갱도에서 서행하는 증기열차는 시월 중순의 남부라서 아직 속도가 느리다. 사람도 단풍드는지 이때쯤 붉어지는 마음이 있다. 붉어지는 마음만 있으면 또 어찌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래지는 마음도 있다. 맞불이다. 치명에 드는 줄 모르고 치명에 드는 계절. 그렇게 가을은 사람을 살짝 폐허에 들게 한다. 폐허에 든 마음을 땔감으로 쓰시라 단풍 화물차에 던져넣는다. 기온이 내려가면 기차는 점점 더 속력을 낼 것이다. 번질대로 번져서 재가 될 내 마음이 거기 있다. 김종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