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칼럼] '라스'란 신조어에 놀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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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 사건은 곗돈을 떼어먹은 것과 차원이 다르다. 동네 주민과 상인을 상대로 계 모임을 하면서 수억 원대를 빼돌린 거와 비교하기 어렵다.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귀족계 사고와도 성격이 같지 않다. 강남 부유층이나 권력 실세들끼리 벌어진 일이니, 서민으로선 먼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핵심은 사적인 일이 공공성이란 가면으로 위장했다는 점이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의 펀드가 어떻게 공적으로 보증을 받은 금융 상품처럼 팔려나갔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사모펀드는 이처럼 소수 투자자를 모집해 운영하는 고수익 기업 투자 펀드를 말한다. 그런데도 은행과 증권사 판매 창구 직원들은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이탈리아 헌법이 바뀌지 않는 한, 국가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안전하다’라는 말로 고객을 현혹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전형적인 ‘공갈빵’이었다. 모인 돈은 부실 투자로 이어졌다. 금액이 수조 원에 달한다. 판매사도 수탁회사도 사무수탁사도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애초부터 아예 사기를 치기로 작정하고 자금을 빼돌린 정황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사문서를 위조한 혐의마저 포착됐다.

사적 영역에 공적 가면 씌워
돈 빼돌린 전형적인 ‘공갈빵’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온갖 시련으로 나라 어려운데
사기꾼 활보하는 혼란한 시국
정권 후반기 불안과 불신 가득


펀드에 투자해 손해를 본 이들은 모두 부유층이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거래하던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의 권유로 가입하게 된 소상공인들이 다수였다. 이들이 바라는 금리도 높지 않았다. 안전한 상품은 금리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뢰성이 존립 근거인 은행이나 증권사, 공공기관을 통해 금융 사기가 일어났으니 황당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대명천지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다니”라는 한탄이 나올 만하다. 요즘 알토란 같은 돈을 넣은 펀드 통장을 다시 보는 서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어떻게 은행이나 증권사에 돈을 맡길 것인가. 불신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더 이해되지 않는 건 금융 감독 기관이 사고 재발을 방관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라임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올해 다시 닮은 꼴, 아니 더 악질적인 옵티머스 사기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처럼 우둔한 이가 있을까. 있다. 바로 ‘소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치는’ 경우이다. 여기에 더해 남이 맡긴 소를 잃어버리고 외양간을 수리하지 않는다면 공범자나 다름없다.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바로 이번 사모펀드 사기 사건이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존재 이유에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데는 2015년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로 시행된 조치로 사모펀드 설립 절차는 줄어들고 점검 시스템은 해이해졌다.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의 금액 문턱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대폭 낮춘 것도 이때였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전문성, 신뢰성, 윤리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도 사모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셈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문 꾼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라임·옵티머스 사태라고 할 수 있겠다. 정책 실패,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 기관의 부실 감독이란 삼박자가 어찌 이리도 교묘하게 딱딱 들어맞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이런 연쇄 부조리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 될 일을 되게 한 보이지 않은 힘이 느껴진다. 힘 있는 자의 뒷배가 의심나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권력 게이트로 규정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 실세의 개입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여권은 검찰의 농간으로 역공한다. 현 정권을 겨냥한 프레임이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여러 이름이 거론된다. 돈맥(脈)은 인맥(人脈)과 겹친다는 속설이 여실히 증명된다.

‘라임·옵티머스’를 줄여 ‘라스’라고 부른다. 이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라스푸틴이란 이름이 자연스레 떠올라서다. 첫 두 글자가 같을 뿐인데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20세기 초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앞당긴 인물. 온갖 술수로 황제를 농락하면서 망국으로 몰아넣은 요승(妖僧)이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정권 말기에 자주 이런 요물이 등장했다. 권력에 줄 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결국 여러 대통령의 말년을 불행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지금은 다르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라스’라는 신조어에 간이 떨어질 뻔한 이유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정을 절감한다. 온갖 시련이 닥쳐 나라는 어려운데 사기꾼들은 득실거린다. 하나 정치인들은 싸움박질에만 골몰하고 있다. 추악한 권력 투쟁의 일면까지 엿보인다. 참으로 음습하다. 요기스러운 시국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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