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서사 형식 덕에 강제 이주 열차의 참혹함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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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심사평

심사 대상은 세 권의 단편집과 다섯 권의 장편이었다. 먼저 단편집들은 기억을 촘촘하게 재현하거나 일상의 허위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섬세하게 소통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읽게 했다. 처음부터 장편에 더 무게를 주지는 않았으나, 장편에 있어서 서술 역량과 실험 정신이 도드라진 작품이 많았다. 오랜 토의 끝에, 과 과 , 세 편을 남겼다. 은 독특한 인물 창조와 긴 호흡의 서술 능력에서, 은 핍진한 현실 인식과 절제된 문법에서, 은 역사적 진실에 육박하려는 투철한 작가 정신에서, 두루 충분한 의의를 발했다.

김숨의 을 수상작으로 결정한 이유는 불필요한 작위와 편집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잊힌 역사의 기억을 소환하려는 견결한 의지와 발화의 방식에 있다. 소설을 통하여 사실을 증언하려고 노력해 온 작가는, 생존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면담을 통하여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한 ‘흐르는 편지’를 지나면서 ‘떠도는 땅’에 이르러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열차를 탄 한인들의 집합적인 목소리들을 복원했다. 극한의 생존 위기에 내몰린 한인들이 저마다 내뱉거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소설가의 특권인 허구를 매개로 실재를 복원하려는 간절한 염원의 산물이다. 개별 인물들이 서로 다른 생애의 내력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면서 한데 어울리는 과정은 집합적 주인공들의 다성적(多聲的) 서사에 부합한다. 한편으로 목소리로 들려주고, 다른 한편으로 극적 제시로써 장면을 보여 주면서 강제 이주 열차 속의 참혹한 현실을 공감각으로 감응하게 한다. 무엇보다 감응을 이끄는 서술의 새로움이 낯설지만 이러한 낯섦이야말로 작가가 모든 공력을 기울인 서사 미학의 새로운 경계임이 분명하다.

위안부 문제를 요산 선생이 먼저 거론한 바 있고, 민족 문학의 시야를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로 넓혀 간 단서를 요산 선생이 만든 바 있다는 점에서도 김숨의 은 요산김정한문학상의 이름에 부합한다. 이번 수상이 또 하나의 격려가 되어 더 큰 정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심사위원 모두 축하의 한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유익서 정찬 황국명 구모룡 이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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