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방 소멸 막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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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어쩌다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나는 임차인”이라며 전세살이를 자랑하는 세상이다.

요지경 정국에 염치없이 숟가락 하나 얹자면 나야말로 임차인이다. 서울 발령 이후 결혼 13년 동안 집주인의 사정으로 4번 ‘강제 이사’한, 갭투자는 커녕 2년마다 치솟는 전세금을 구하느라 ‘영끌 대출’을 하는, 최근에는 더 확실해진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에 전쟁이라도 나야 이 미친 집값이, 이 폭주하는 ‘수도권 월드’가 뒤집어질까 하는 못된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는, 그런 진짜 임차인 말이다. 지역구에 마련한 전세 걱정 따위나 늘어놓는 ‘배지’들의 서민 코스프레는 댈 바가 아니다.

與 부동산 위기에 ‘급소환’한 균형발전
이슈 전환용이라면 실패 불 보듯
수도권 팽창 억제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정략 접고 국가적 역량 집중해야

이렇게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폭등의 폐해를 온몸으로 실감 중이지만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얼마 전 불쑥 꺼낸 행정수도 이전과 뒤 이은 여권의 국가균형발전 드라이브는 반갑기보다는 생뚱맞았다. 집권 3년간 뭐하고 임기 2년도 안 남은 이제 와서?

올해 수도권 인구가 나라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선 게 계기가 됐다는데, 그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에야 호떡집 불 난 듯한 공공기관 2차 이전만 해도 “대통령이 부정적이라 진도가 잘 안 나간다”던 여권 고위인사의 한숨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다수의 생각처럼 작금의 부동산 위기가 국정 주요목록에서 밀려난 균형발전을 부랴부랴 앞순위로 소환했다는 게 정확한 배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지역은 이게 또 한 번의 ‘희망 고문’이 될 것이라는 짙은 의구심을 뒤로 하고 다시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볼 요량이다. 여권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 만큼 절박해서다.

수도권 인구가 과반을 넘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수도권으로 완전히 넘어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21대 총선에서 서울·경기·인천의 지역구 의석수는 전체 253석 중 121석이다. 아직 비수도권이 11석 많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역전을 피할 길이 없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전면적인 표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쉽게 오진 않겠지만, 산술적으로 비수도권 전체가 찬성해도 수도권이 반대하면 입법도, 정책도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 함의는 실로 파괴적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제2 도시가 30년간 부르짖은 가덕신공항을 “지방에 무슨 관문공항”이냐며 간단히 뭉게는 수도권 권력이다.

그러니 여권의 이번 태세 전환이 부동산 이슈 전환용이라면 행정수도 이전도, 공공기관 이전도 실패는 이미 예정된 경로다. 둘 다 176석 거여(巨與)의 힘을 총동원해도 될까말까한 난제다. 참여정부 시절 1차 공공기관 이전을 진두지휘한 성경륭 당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이전 대상 기관의 극력 반발에 대비해 사표를 품에 넣고 다녔다.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비상한 각오 없이 될 일이 아니다.

여권이 뒤늦게라도 진심을 담아 추진할 것이라면 방향도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정책으로는 내 자식은 서울에서 교육시키고 제대로 된 일자리 잡게 만들고 싶다는, 서울에 집 사서 중산층으로 올라서겠다는 오랜 욕망을 누를 수 없다. 해방 이후 70년 동안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서울을 ‘꿈의 도시’로 키웠다면, 이제는 지역에 그 역량을 집중할 때도 됐다.

얼마 전 한 칼럼에서 부동산 문제 해법으로 무주택자에게 청약가점을 줄 것이 아니라 집을 샀을 때의 시세차익에 버금가는 혜택을 주자는 제안을 봤다. 교육비·병원비·보험료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부터 복지까지 집을 안 산 덕분에 미래가 결코 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자연스레 집 수요도 줄고, 집값도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참 ‘신박한’ 아이디어 아닌가.

14개 비수도권 시·도에 찔끔 나눠주기 식의 기존 균형발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공공기관 2차 이전뿐만 아니라 이제는 포기해버린 대기업과 중견기업 본사의 지역 이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유인책을 마련하고, 지역 대학에도 서울 주요대학에 버금가는 집중적인 투자를 해 인재 유출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격차의 핵심인 교육·의료·일자리에서 오히려 지역에 사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을 줄 정도의 과감한 접근만이 블랙홀처럼 인적·물적 자원을 끌어당기는 수도권의 구심력을 낮출 수 있다.

지역 소멸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체제를 뒤흔들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여든 야든 지역의 절박함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역사에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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