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슬픈 알파벳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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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터 Z까지 영어 알파벳 26개 문자 중 열네 번째인 N. 이 글자가 요즘처럼 세간의 주목을 끄는 시기가 있었을까? ‘코로나19 N차 감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N자의 용도는 질소의 원소기호가 일반적이다. N은 북쪽·북극을 나타내는 부호인 쓰임새도 있다. 해군(Navy), 새로운(New), 11월(November)을 의미하는 약어이기도 하다. N은 197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나 컴퓨터에 능한 ‘네트워크(Network) 세대’를 줄여 부르는 ‘N세대’에도 쓰인다.

그런데 수학 용어인 부정수(不定數·정해지지 않은 수)를 표시하는 기호가 소문자 n(number)인 데서 ‘N의 비극’이 생겼다. 1차, 2차, 3차, 4차…. 1이 계속 더해질 때 수학에선 3일 수도 있고, 4일 수도 있는 ‘그 몇의 수’를 ‘n’으로 표기한다. 즉, ‘n차’이다. 예를 들면, ‘N가지’는 ‘몇 가지’ ‘여러 가지’ 같은 복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달 초 발생해 벌써 6차 감염 사례가 나온 서울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통틀어 ‘N차 감염’이라고 하는 것. 다만, 사용자들이 N의 대문자와 소문자를 혼용해 쓰고 있을 뿐이다. 7·8차 감염과 확진자 증가 등 N차 감염의 추가 확산을 경계할 때다. 지난 18일 검찰에 송치돼 얼굴이 공개된 문형욱(닉네임 ‘갓갓’)이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통키 위해 텔레그램에 개설해 운영한 1~8번 대화방 등 8개의 방. 이를 모방한 ‘박사방’과 ‘고담방’. 이 모두 ‘N번방 사건’으로 불리며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처럼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에 ‘job(직업)’과 사람을 가리키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 ‘N잡러’가 있다. 당초 젊은 층 사이에서 본업 외에 부업과 취미활동을 즐기거나,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능력자를 지칭했다. 최근 N잡러는 청년실업이 심화되고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급감하자 고만고만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힘겹게 전전하는 사람을 일컫는 어감으로 바뀌고 있다.

또 다른 신조어 ‘N포세대’는 더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다. N가지를, 많은 걸 포기했다는 의미다. 극심한 취업난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취업과 내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희망과 인간관계마저 놓아버린 ‘칠포세대’를 다 포함한 말이다. 만일 N에게 자아가 있다면, 좋지 않고 부정적인 표현들에 N을 남발하는 인간을 원망하며 자신의 신세를 몹시 슬퍼할 듯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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