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오거돈과 동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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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경제부 차장

부산시 지역화폐 동백전 발행 보름 후 가입자 증가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기사를 썼을 때 일이다. 동백전이 선불카드가 아니라 앱을 통해 체크카드를 신청하는 방식이어서, 고령 인구가 많은 부산에서 보급에 한계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난 다음날 오전 오 전 시장은 이례적으로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개인적 친분도 없는데, 비서실을 통해 기자들에게 통화하는 관례를 깨고 전화를 한 것이다. ‘동백전 캐시백 혜택이 커서 이용자가 늘어날 것이다, 지켜봐 달라’는 것이 오 전 시장의 요지였다.

정중하긴 해도 기사에 항의한 것이기에 기사 취지를 설명하며 짧은 논박을 주고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의 남다른 동백전 사랑이 든든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있는 일자리마저 전국 평균 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주는 음식점과 도·소매업종에 몰려 있는 부산으로서는 지역화폐가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시장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한 것이리라 내심 기대를 했다.

오 전 시장의 사퇴 발표일 오전. 공교롭게 부산시 지역화폐 동백전을 취재 중이었다.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후 참담한 기분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백전 취재에도 힘이 빠졌다. 시장의 사퇴로 동백전도 실패 수순으로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동백전의 성공 기준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는 지역화폐 관련 국비 예산을 3년 동안 지원하겠다고 했다. 준다는 국비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시장의 부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예산 매칭 비율에 맞춰 시민들에게 캐시백을 주다가 예산이 부족하면 중단하면 된다.

예산을 투자금 삼아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의 핵심 수단으로 지역화폐를 접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식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따라 지역화폐의 성패는 갈린다. ‘남는 장사’를 하기 위해 얼마를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논의와 정무적인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이 떠나면서 지역화폐를 지역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이끌 컨트롤타워는 사라졌다.

재난지원금을 선불카드로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선불카드 대란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오 전 시장과 통화가 다시 떠올랐다. 선불카드로 동백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애초 시민과 상인 등 전문가로 구성된 지역화폐 추진단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이들의 요구와 달리 동백전은 체크카드 형태로 바뀌어 발행됐고, 추진단이 설계했던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도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지만, 도입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지역화폐를 추진한 오 전 시장에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백전을 보완해 도입 취지대로 이끌어갈 구심점이 사라졌다. 도입 취지가 뭐였는지도 잊히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회의마저 나오고 있다. 상반기 투입된 예산만 6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 그저 ‘매몰 비용’으로 전락할 처지다.

동백전 예산 소진을 앞두고, 선불카드 대란을 지켜보며 씁쓸함이 떠나지 않는다. s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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