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민 건강권과 사생활권 보호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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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비교공법학회장

“한국은 개인의 자유에 있어서 최악의 국가다. 디지털 감시 사회를 만든 나라이고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감시와 고발이 많은 나라다. 한국은 개인의 자유라는 걸 오래전에 포기한 나라다.” 11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어권 최대 경제지인 프랑스 레제코(Les Echos)에 실렸던 비르지니 프라델 변호사가 쓴 ‘코로나바이러스와 동선 추적: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말자’는 글의 일부이다. 그 이튿날 레제코는 정반대 의견을 담은 ‘코로나를 제압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일부 희생하자’는 다른 사람의 기고문을 보도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추적 허용에 관한 이 논쟁은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의료진, 시민들은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대응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정된 문제점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확진자 동선 공개와 관련된 사생활 침해다. 확진자 동선이 지나치게 자세히 공개되면서 ‘사생활 침해’와 ‘국민 생명권 우선’이라는 찬반 논쟁이 팽팽하게 맞섰다. 확진자를 특정할 수 있을 법한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적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 논란
‘방역 필요성’ 공익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 문제 피해 갈 수 없어

‘건강권·사생활 보호’ 둘 다 중요
추상적인 관련 법규 재정비하고
정보공개 세밀한 매뉴얼 마련해야


확진자 동선 공개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공개되는 내용은 개인정보에 해당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도 ‘공중위생 등 공공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경우로서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로서 공개가 허용된다. 때문에 확진자 동선 공개는 관련 법률에 근거를 둔 법적 조치이고, 익명 처리된 정보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정해진 가이드라인 없이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고, 동선이 시간대별로 상세히 공개되다 보니 확진자가 특정될 여지가 커서 논란이 가중됐다. 급기야는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코로나19 감염병 환자 이동경로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을 전국에 배포했다. 역학적 이유, 법령상의 제한, 확진자의 사생활 보호 등 다각적 측면을 고려해 감염병 예방에 필요한 정보에 한하여 공개하도록 공개 기간과 범위를 한정했다.

가이드라인 배포 이후에도, 동선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밝혀야 피해를 줄일 수 있고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가이드라인대로 동선 공개가 축소되고 필요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구체적인 정보가 누락돼 국민 스스로 밀접 접촉자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어서 초기 방역 단계에서의 방역 효과가 줄어든다. ‘최소화’하고 ‘축소’한 정보공개로 더욱 다양한 억측이 난무할 수 있다는 점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발생 우려도 지적된다.

방역의 필요성이라는 공익과 확진자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라는 사익의 충돌을 둘러싼 논쟁적 상황은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공동체의 도덕철학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만으로 모든 공개를 정당화해서도 안 되고, 현대사회의 중요한 인격적 권리인 사생활권 보호 주장을 개인적 이기심으로 몰아가서도 안 된다. 사생활권 보호도 국민의 건강권 보호만큼 중요한 권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헌법상 보호되는 사생활권도 보호에 한계가 있다. 목적상·방법상·형식상·본질적 내용상의 한계가 그것이다. 효과적 방역을 위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정보공개에 의해 제한되는 개인의 사생활권이 침해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방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감염병예방법과 시행령 규정은 정보 주체의 사생활권 보호라는 면에서 본다면 추상적 내용이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 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관련 기관·단체·시설이나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국민 건강에 관한 중요한 정보’로만 정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에 대한 법률의 침묵은 지자체별로 제공되는 정보 내용의 차이를 가져왔고, 현실적인 혼란이 되었다. 프랑스 한 논객의 섣부른 평가 내용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련된 법규를 재정비해야 한다. 공개 주체, 공개 대상 정보, 대상 범위, 처리 및 폐기 절차, 이의제기 및 손해배상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정보공개 기준이 통일되어야 하고, 방역 전문가의 의견을 결정 과정에 절차로 구조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감염병 관리를 위한 정보공개에 관한 세밀한 우리만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사생활의 보호는 모두 우리가 함께 실현해 가야 하는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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