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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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되새기는 사랑의 감정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판씨네마 제공

한 명의 인간을 정의하는 것도 어렵지만,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관계를 명확히 규정짓는 건 인공지능을 가졌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얽혀 있으면 보편적 기준으로 재단하기 어렵다. 그런 관계에서는 이성과 논리보다 본능과 기질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번 싹텄던 연정은 시들었다가도 어느 순간 또 꽃을 피우곤 하므로 함부로 과거형을 쓸 수가 없다.

헤어진 전 남친과의 우연한 재회
위트 있는 대사·현실적 상황 재미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감독 소피 브룩스)의 ‘다이아나’(조시아 마멧)와 ‘벤’(매튜 쉐어) 또한 재결합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옛 연인’들이다. 끝내 잡히지 않았던 작은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르기도 하는 것처럼 이들의 관계도 향방을 알 수 없다.

작가 지망생인 다이아나는 3년 동안 런던에 있다가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입주한 아파트의 아래층에 하필 벤이 살고 있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 많이 사랑했지만 자신의 앞날을 위해 매몰차게 이별을 고했던 바로 그 남자다. 처음에 다이아나는 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믿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려 한다. “전 남친이랑 친구 하면 범죄예요?”라는 다이아나의 대사는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감독 로브 라이너)의 질문, ‘친구가 연인이 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를 전복시킨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물론 가능한데도, 다이아나와 벤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친구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플래시 백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아직 사랑이 한창일 때 이별을 시작했고, 감정이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우했던 것이다. 해리와 샐리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게 된 해리의 적극적 구애로 해피 엔딩을 맞았지만, 다이아나와 벤의 심리는 좀 더 복잡하다.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다이아나와 가슴 아픈 실연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벤의 행동이 엇갈리며 관계는 혼란스러워지고 두 사람은 계속 규정할 수 없는 사이로 남는다.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는 과장된 드라마나 떠들썩한 코미디 없이 위트 있는 대사와 비교적 현실적인 상황극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뉴욕이라는 도시도 대단히 낭만적이고 환상적이기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다소 조야(粗野)한 플래시 백 연출도 영화 전반의 톤과는 어울리는 편이다. 선남선녀들의 파란만장한 로맨스물에 식상함을 느끼는 이들, 묘연한 사랑의 감정에 조금은 천천히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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