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이상하고 재미있는 영화, ‘다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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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영씨’ 스틸컷. 부산일보DB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이 돌아왔다. 루저들의 중창단 도전기 ‘델타 보이즈’(2016), 몸보다 마음이 더 튼튼했던 고등학교 레슬링부의 전국체전 1승 도전기 ‘튼튼이의 모험’(2017)에서 독특한 소재로 웃음을 만들어낸 고봉수 감독이 이번에는 ‘다영씨’라는 로맨스 영화로 찾아왔다. 코미디 영화에 최적화된 감독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어떤 사랑 이야기를 논할지 영화 개봉 전부터 궁금했다. ‘다영씨’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퀵서비스 기사였던 민재는 사랑 때문에 전 직원이 8명인 작은 회사 삼진물산에 입사한다. 배송물을 전해주며 만났던 다영이 회사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로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다영이 힘든 회사 생활은 하는 이유는 사장의 딸이면서 회사의 서열 2인자 하람의 괴롭힘 때문이다. 하람은 이유 없이 다영을 미워하고, 하람에게 아부하려는 직원들까지 동조해서 다영을 괴롭힌다. 민재는 그런 다영을 돕기 위해 입사했고, 직원들은 그런 민재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민재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다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오다가다 몇 번 만난 사이에 어떻게 저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다영과 민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민재는 밥 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아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우면서까지 고객들의 배송물을 배달했지만, 매번 늦는다고 욕을 얻어먹었다. 민재 또한 다영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던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봉수 감독의 영화들은 재미있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루저들’ 고군분투기에 능한
독립영화계 스타 고봉수 감독
독특한 로맨스 영화로 돌아와

100만 원 들인 초저예산 영화
기발한 흑백 무성영화 탄생


감독은 ‘다영씨’ 이전에 만든 두 편의 영화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루저들’의 고군분투기를 다루어왔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는 그들을 하찮게 여기고, 실패를 단언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마음을 다하는 것. 그로 인해 행복하면 그만이다. 사실 경쟁이나 스펙 쌓기로 바쁜 이 시대, 민재 같은 청년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민재와 다영 씨가 겪는 회사 생활은 우스워 보이면서도 슬프다.

‘다영씨’는 3회 차 촬영에 100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초저예산 영화다. 돈 들이지 않고도 이런 기발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진부한 짝사랑 이야기는 흑백의 무성 영화로 전달되면서 오버액션과 기발한 연출력을 돋보이게 하고, 대사가 없는 민재와 다영은 표정을 통해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무성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흘러나오게 만들며 영화를 생동감 있게 하는 등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결국, 민재는 다영을 대신해서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퀵서비스를 다시 시작한 민재는 삼진물산으로 배송을 갔다가 다영씨를 만난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사랑한다거나 사귀자는 고백의 말들이 오고감이 아니라, 그저 수줍게 미소 짓는다. 민재는 다영에게 귤 하나를 건네고 돌아선다. 60분이라는 짧은 영화의 시간동안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더니, 영화의 엔딩에서 드디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온전히 마음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니까 ‘다영씨’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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