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질곡 품은 '광복동'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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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902년 변천정과 앵천의 모습이 보이는 광복로, 1926년 삼중정(三中井·미나카이) 오복점 부근의 광복로, 1952년 임시수도 당시의 광복로, 1980년대 옛 로얄호텔에서 옛 미화당백화점으로 들어가는 광복로, 2018년 광복로. 임시수도기념관 제공·부산일보 DB

올해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조건부로 등재됐다. 이를 계기로 피란수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시기 부산의 중심지 기능을 했던 ‘광복동’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광복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성이 강한 지역이다. 초량왜관 시절에는 조선과 일본의 전초기지였고,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 전관거류지였을 때 번화가였던 장수통(長手通·지금의 시티스폿에서 옛 로얄호텔 사이의 광복로)은 일본인들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1917년 전차가 개통돼 장수통을 가로 질러 운행하는 등 당시 새로운 근대 표상으로 근대성과 식민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임시수도기념관 학술총서
‘기억의 소환 광복동’ 발간
역사·건축·국문학 등
다양한 전문가 대거 참여
“피란수도 역사문화 기록”


광복동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해왔다. 1980년대까지 한국 패션계를 이끌어가던 화려한 뷰티(Beauty) 거리였고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부산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도시 외곽에 신도시 건설과 지하철이 연결되면서 많은 소비계층이 떠나가면서 광복동 상권은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주민과 중구청, 지역상공인들의 노력으로 광복동 이미지는 변모하기 시작했다.

임시수도기념관(관장 박미욱)이 광복동의 340여 년간의 변화 과정을 한 눈에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2018년 학술총서 <기억의 소환 광복동을 말하다>(사진)가 그 결과물이다.

임시수도기념관은 광복동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시기별로 다뤄 광복동 일대의 역사적 흐름을 전반적으로 파악했다. 총서는 ‘광복동 역사 형성과 공간적 특성’(1장) ‘광복동 역사지리와 공간의 기억’(2장) ‘광복동 번화가와 사람들’(3장) ‘광복동 주민들의 구술 생애사’(4장)로 구성됐다.

특히 ‘광복동 역사지리와 공간의 기억’에서는 1903년, 1907년, 1916년, 1936년 지도를 분석해 광복동의 주요 건물 위치를 제시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역사적 기억이 중첩된 9곳을 선택해 변천 과정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역사적 기억을 정리했다.

9곳은 독립정신과 민족자본의 상징인 백산상회의 기억을 담은 백산기념관, 식민지 착취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과 미문화원의 기억을 담은 부산근대역사관, 옛 부산부청, 새부산타운, 롯데백화점 광복점, 옛 로얄호텔 자리, 용두산 공원, 대각사, 옛 미화당 백화점 등이다.

임시수도기념관은 광복동 조사에 도시사, 역사학, 도시건축, 국문학 등 전문 연구자들을 참여시켰다. 우선 역사학을 중심으로 문헌 검토에 착수했다. 그 내용을 토대로 도시사, 경제사, 문화사 등으로 구분해 영역별로 형성과 번영, 쇠퇴 등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사료 검토와 다양한 문헌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구역별로 나눠 주요 건물들의 입지와 위치, 면적 등을 현지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했고 광복로의 가로 경관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파노라마 사진 등을 촬영했다.

임시수도기념관 박미욱 관장은 “이번 학술연구총서의 발간은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문화 자산을 생생히 기록하고 확보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한국전쟁기 부산 역사자료의 수집 조사와 부산 근현대사 연구에 있어 소중한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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