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나침반과 지도
/송시섭 동아대 법학전문다핵원 교수 변호사
세상에는 사람을 분류하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하지만 난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나침반을 따라 가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도를 검색하며 사는 사람이다.
나침반(compass)의 본래의 역할은 정북(True North)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장소에서도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향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 나침반만을 들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 난 길 외에 다른 길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젊었을 때 한 번 정한 목표를 한평생 사는 동안 바꾸지 않고 모든 실패와 좌절을 뚫고 그 곳에 도착하는 사람에게서 우린 영웅의 이미지를 보고,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방향만 달리는 나침반 인생
타성과 구태에 빠질 위험 있어
다양한 선택지 펼치는 지도
새로움에 도전하지만 목표 없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는
나침반과 지도를 함께 갖춰야
하지만 나침반 인생에 늘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기업가, 국회의원, 장성, 고위 공무원, 그리고 법조인의 인생 목적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념의 끝에서 우린 나침반 인생의 어두운 말로를 보게 된다. 10대 때 정해진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십 년을 달려온 사람에게는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신성한 종교'가 된다. 그 길을 열심히 성실하게 '사심(私心) 없이' 질주하다 보니 자신을 객관화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주어진 선례를 쫓아 그대로 베껴 쓰는 '습자지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나침반 인생의 위험성에 대하여 퓰리처상 수상의 극작가 토니 쿠쉬너가 영화 '링컨'의 주인공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 주고자 했던 내용은 무엇일까. "나침반, 그것은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정북을 가리켜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북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될 늪, 사막, 그리고 건너야 할 협곡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링컨의 정치역정에서 우러나 그에겐 좌우명과도 같은 이 대사는 나침반만 따라 가는 인생에서 조심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암시해 주고 있다.
우린 요즘 방송을 통해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서 있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나침반 인생을 만나고 있다. 이익만을 추구하며 달려왔던 기업인이나 올곧이 논리만 지키며 살아온 법조인들은 자신이 그 자리에 서기 전까지는 아마 방향에 대한 의심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구태의 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수렁에 빠지고, 아득한 벼랑에 떨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나침반밖에 없었음을 보게 되는 인생,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인생의 모습이 있다. 바로 지도 인생이다. 지도는 나침반과 달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선택지를 있는 그대로 펼쳐 놓고 우릴 보고 스스로 선택하라고 한다. 여기에 무엇이 있고, 저기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지도는 그 어느 것에 대하여 그 어떠한 우선순위도 매기지 않는다. 특별한 목적이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노마드(Nomad) 인생, 즉흥적인 선택과 날마다 변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달랑 한 장의 지도가 들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또한 마냥 권할 만한 삶은 아닐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곁을 지나쳐 가는 많은 인물들을 보면서 난 가끔씩 그가 나침반 인생인지, 지도 인생인지를 가려 보곤 한다. 그리고 불현듯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 손엔 도대체 무엇이 들려 있는가. 인생 중반에서야 비로소 내게는 없는 것을 다시 손에 들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나침반만 들고 살아온 인생에게는 지도가, 지도만 보고 다녔던 삶에는 나침반이 주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하물며 한 개인의 인생뿐이랴. 우리 사회 곳곳의 수많은 지도자의 손에 '나침반'과 '지도'는 필수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링컨'으로 돌아와 보자. 그는 노예제도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수정헌법 제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인 민주당원들을 한 사람씩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때론 논리로, 때론 감성에 호소하며, 때론 약간의 협박과 매수까지 곁들여. 그리곤 종국에 그는 '나침반'과 '지도'를 갖고 그를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 아니 한때 그를 반대했던 모든 이들과 함께 '가장 순수한 사람이 가장 부패한 방법으로 만든 가장 위대한 법'이라는 평가를 듣는 그 목적지에 벅찬 희망을 안고 도달했다.